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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관련뉴스/국악한류, 퓨전국악

日서 풀어헤친 국악 한 판, 통역도 설명도 필요 없었다


임방울국악제 수상자들 요코하마서 공연

"아이고, 청아, 네 얼굴이 보인다. 살아있는 내 딸 얼굴이 보이는구나아!"

통역(通譯)도, 설명도 필요 없었다. 심 봉사가 죽은 줄 알았던 딸 앞에서 두 눈을 뜨는 순간, 공연장은 박수에 파묻혔다. 1층 가운뎃자리에 앉아있던 나가하마 이타루(63·건축사)씨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도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솟구친다. 한국의 판소리가 생기있고 힘찰 줄 몰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우리말이 서툰 재일교포 2세 양동순(73)씨는 "어머니가 흥얼거리던 가락이 생각나 가슴을 울린다"고 했다.

주로 클래식을 공연해온 일본 요코하마의 가나가와현립음악당이 임방울국악제 수상자가 꾸미는 국악 공연으로 새 역사를 썼다. 지난 4일 저녁 주요코하마총영사관과 광주광역시가 주최하고, (사)임방울국악진흥회가 주관한 '한국 국악 공연'이 열린 것. 공연은 1993년부터 작년까지 임방울국악제 수상자 중 선발된 19명이 판소리와 부채춤, 가야금병창 등으로 속을 채웠다. 임방울국악제는 판소리 명창 임방울(1905~1961) 선생을 기리기 위해 해마다 개최되는 국악제다.

일본 무대에 선 것은 이번이 두 번째. 작년 이맘때쯤 한 민간단체 초청으로 가와사키에서 열린 수상자 공연을 본 김연권 당시 총영사는 '이거다!' 하며 무릎을 쳤다. 일본에서 국악은 "한국에서 먹고 살기 어려워 일본으로 건너간 국악인들이 요릿집에서 시간당 수당을 받고 짬짬이 선보이거나 교포들이 행사 때 자체적으로 선보이는 게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국악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다는 바람으로 김 전 총영사가 적극적으로 나서 공연이 성사됐다. 두 달 전 부임한 이수존 총영사는 "국악의 아름다움을 다양한 분야에서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공연"이라고 했다.

지난 4일 저녁 일본 요코하마 가나가와현립음악당에서‘한국 국악 공연’무대에 오른 임방울국악제 수상자들이 판소리‘심청가’중 심 봉사가 눈 뜬 대목을 부르고 있다. /김경은 기자

음악당 1040석 객석은 일찍 온 관객들로 공연 전 빽빽이 들어찼다. 초청인사 20여명을 빼고는 대부분 일본인.

1부는 부채춤으로 열었다. 춤꾼 7명이 붉은색 술을 장식한 부채로 꽃물결을 이룰 때마다 객석에선 감탄사가 일었다. 작년 대상 수상자인 김명남(42)씨는 소리꾼 5명과 함께 '육자배기' '삼산반락' '진도아리랑'을 불렀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대목에선 일본인 관객들도 다 같이 흥에 겨워했다. 일본인 연주자 호리에 구미코와 사카타 료잔이 일본의 전통악기인 고토와 샤쿠하치로 일본 전통곡 '봄 바다(春の海)'를 들려주는 무대도 인상적이었다.

2부에서는 장구잽이가 혼자 나와 멋진 발림을 하며 다채로운 장구가락 솜씨를 보여주는 설장고, 소고와 장구가 번갈아 신명 나는 가락을 들려주는 소고장고무에 호응이 쏟아졌다. 단막창극으로 꾸민 '심청가'가 공연될 땐 전 출연자가 무대 위로 나와 덩실덩실 춤을 췄다. 공연 후엔 일본 관객들이 무대로 몰려나와 연주자와 사진을 찍고 "멋지다" "아름답다"를 연발했다. 심 봉사를 열연한 2009년 대상 박평민(64)씨는 "오늘 제대로 한 판 놀았다. 씹으면 씹을수록 깊은맛 나는 국악을 일본에 알리게 되어 기쁘다"고 했다. 주요코하마총영사관은 이날 공연 수익금 80만엔을 동일본대지진 피해자들을 위한 성금으로 기탁할 예정이다.

--> 조선일보 2011.11.07 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