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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민의 국악세상/국악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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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에는 화성이 없는가? 최종민 (철학박사, 국립극장예술진흥회 회장,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교수) 국악에는 화성이 있을까 없을까?. 서양음악에 익숙한 사람들이 국악을 들으면 서양음악에서 느끼는 그런 화성이 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때문에 국악에는 화성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 국악에는 그런 식의 화성은 없다. 화성법에서 공부한 3화음이나 속7화음 같은 화성은 없다. 그래서 국악에는 화성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한때 국악 공부하는 학생들 간에 가곡의 반주 기악을 채보하여 분석하면서 국악에도 화성의 현상이 있다고 한 예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정말 우연일 뿐 화성학에서 말하는 그런 종류의 화성은 아닌 것이다. 국악 작품은 화성학을 배경으로 작곡된 적이 없기 때문에 전통시대의 국악에는 화성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해도..
풍류를 즐기며 살아온 우리 민족 최종민 (철학박사, 국립극장예술진흥회 회장,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교수) 최종민 교수는 1942년 강릉 태생으로 서울대 음악대학 국악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성균관 대학 동양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68년 안동교육대학 교수로 출발 강릉대, 전남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를 거쳐 남원정보국악고등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후 국립창극단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풍류(風流)의 전통 국악을 아는 사람들 간에는 “풍류를 한다.”고 하면 영산회상을 연주하며 노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거문고를 비롯해서 대금․해금․세피리․단소․양금․가야금․장구 등으로 편성되는 악기를 가지고 상영산부터 중영산․세령산․가락덜이․상현도드리․하현도드..
국악가요가 없는 한국의 노래문화 최종민 교수는 1942년 강릉 태생으로 서울대 음악대학 국악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성균관 대학 동양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68년 안동교육대학 교수로 출발 강릉대, 전남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를 거쳐 남원정보국악고등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후 국립창극단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우리민족은 노래와 춤을 좋아해서 고대국가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종류의 노래문화를 다양하게 발달시켰다. 전통음악으로 따지면 각 지방에 특징 있게 발달한 민요와 그 민요를 바탕으로 발달한 무가(巫歌)들, 잡가종류, 가곡, 가사, 시조, 제사에 사용되는 악장(樂章), 시창, 송서, 판소리, 범패 등 엄청난 양의 노래문화가 발달..
창극의 스타와 판소리명창 최종민 교수는 1942년 강릉 태생으로 서울대 음악대학 국악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성균관 대학 동양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68년 안동교육대학 교수로 출발 강릉대, 전남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를 거쳐 남원정보국악고등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후 국립창극단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창극은 스타의 산실이었다. 초창기에는 판소리로 이름 높은 명창들이 창극을 시도했기 때문에 김창환·이동백·송만갑은 그 자체 스타이고 명창이었다. 정정열까지도 명창이 스타가 된 경우이지만 오태석은 조금 달랐다. 오태석은 판소리명창으로 보다는 창극의 스타로 유명했다. 그가 출연한 춘향전(방자역)이나 수궁가(원숭이역) 등에서는 관객들이 ..
한국음악의 정체성을 찾아야 최종민 (철학박사, 국립극장예술진흥회 회장,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교수) 최종민 교수는 1942년 강릉 태생으로 서울대 음악대학 국악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성균관 대학 동양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68년 안동교육대학 교수로 출발 강릉대, 전남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를 거쳐 남원정보국악고등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후 국립창극단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사람은 반성할 줄 아는 존재이고 반성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을 때 새로운 삶이나 창조적인 삶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도 간단해 보이는 문화에 대한 깨달음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세종께서는 우리가 오랫동안 사용해온 外來의 漢文을 우리글처럼 한국..
아쟁산조를 창시하고 안중근전을 작곡한 고법의 인간문화재 정철호 최종민 교수는 1942년 강릉 태생으로 서울대 음악대학 국악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성균관 대학 동양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68년 안동교육대학 교수로 출발 강릉대, 전남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를 거쳐 남원정보국악고등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후 국립창극단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지금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가야금이나 판소리 어느 하나만 전공하는 것이 보통이다. 공부하는 방식도 서양음악 공부하는 학생들처럼 이 음악 저 음악을 단계적으로 하나하나 공부하곤 한다. 성악이나 기악이나 자기 분야를 작품별로 하나하나 공부하여 음악적으로 성숙해 가도록 제도가 되어있다. 이것은 옛날 우리나라 음악교육 제도와 다른 것..
중국음악과 한국음악의 본질적 차이 최종민 교수는 1942년 강릉 태생으로 서울대 음악대학 국악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성균관 대학 동양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68년 안동교육대학 교수로 출발 강릉대, 전남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를 거쳐 남원정보국악고등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후 국립창극단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나는 어려서 한문을 배웠다. 어머니께서는 아침에 일어나서 글(한문)을 외우지 않으면 아침을 차려주시지 않을 정도로 매일 한문공부를 독려 하셨다. 그 덕분에 한문을 배운 것이 나의 일생에 큰 보탬이 되었는데 좀 더 열심히 배우지 않은 것을 늘 아쉽게 생각하고 후회스러워 한다. 한문은 그 글 자체가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글..
한국인들의 놀라운 음악재주 최종민 (철학박사, 국립극장예술진흥회 회장,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교수) 최종민 교수는 1942년 강릉 태생으로 서울대 음악대학 국악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성균관 대학 동양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68년 안동교육대학 교수로 출발 강릉대, 전남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를 거쳐 남원정보국악고등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후 국립창극단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한국출신은 음악을 잘 한다. 보통사람들도 노래를 잘 하지만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들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음악가가 많다. 장한나 같은 경우는 우리나라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얼마 안 되어 세계적인 로스트로포비치 첼로 콩쿨에 나가 우승하는 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