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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인 이야기

황용주,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 선소리산타령 예능보유자를 만나다.




요즘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빌보드차트 2위까지 오르며 대한민국 문화의 힘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는 한류바람이 불고있다.


하지만 우리의 소리는 점차 살아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 묵묵히 58년을 우리의 소리를 지키며 계승발전에 온 힘을 쏟고 수많은 제자를 양성하고 있는 우리소리 지킴이 황용주선생을 소개한다.

어린 시절 배운 한학을 바탕으로 국악 사설을 정리하고 음악적 이론을 정립한 이론가이기도 한 황 명창은 ‘한국고전음악선집’, ‘한국 경·서도 창악대계(상·하권)’, ‘한국 경·서도 창악산타령’등 세권의 저서를 펴냈고 수많은 제자를 양성하고 있다.

황 명창이 선소리산타령에 입문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지난 1937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그는 일자리를 찾으려고 고등하교 졸업 후 서울로 올라왔다.

 
동대문에서 양품도매상 점원으로 일하던 그는 국립국악원에서 시조 강습생 모집 공고를 접하면서 故 이주환선생께 시조를 배우게 됐다.
 
그 뒤에 바로 故 벽파 이창배선생을 만나서 가사, 시조, 경·서도 창 및 선소리산타령을 사사받았고 지난 1968년 4월 경기·서도 선소리산타령이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을 받은 후 전수 장학생으로 선정돼 고 벽파 이창배선생의 뒤를 이어 경·서도 선소리산타령의 전승교육에 힘을 쓰고 있다.

근래에 급격히 밀려들어오는 서구 문화의 내습으로 인해서 우리의 전통음악은 뒷전으로 밀려 인멸의 위기까지 이르렀으나 정부의 우리의 전통음악과 문화 창달의 시책에 힘입어 전승보급 발전에 힘이 되고 세계문화유산에 일부가 등재되기까지에 이른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경기지방에서 전승되어 오는 경기선소리산타령과 서도지방에서 전승되어오는 서도선소리산타령은 입창(立唱)형식, 즉 서서 부르는 노래이며, 경기12잡가와 서도좌창은 앉아서 부르는 노래로서 이 세 장르가 경·서도 소리의 대표적인 악곡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 경기선소리산타령은 ‘놀량’, ‘앞산타령’, ‘뒷산타령’, ‘잦은산타령’, ‘개구리타령’이요, 서도선소리산타령은 ‘놀량’, ‘앞산타령’, ‘뒷산타령’, ‘경발림’ 등을 기본틀로 이어 부르는 노래이다.

그런데 옛날 우리들의 스승님과 선배님들의 시대에는 경기창과 서도창을 아울러서 같이 전승을 시킨 관계로 경·서도창이라고 명칭을 하고 또한 경·서도인이라고 부르며 경·서도창을 같이 전승시켰는데 요근래와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을 시키면서 경기민요(경기좌창, 제57호), 서도좌창(제29호), 경·서도선소리산타령(제19호) 등으로 분류되어 지금의 현실과 같이 분류되었던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현재 880여 쪽짜리 경·서도 창악대계를 내놓은 상태인데 이를 증보해서 1,200여 쪽짜리로 내놓으려고 막바지 노력 중이다.

 
그리고 우륵·왕산악·황진이·박연과 함께 현재 일선에서 활동하고있는 국악인들까지 아우르는 8권가량의 역대명인명창대전집을 내려고 준비중이다.

황용주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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