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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인 이야기

한국무용가 정혁준, 한국무용춤사위로 세계를 누비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이는 인간의 수명이 길어봤자 100년 이쪽저쪽인데 반해 위대한 예술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불멸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봄볕이 언 땅을 녹이듯이 예술은 메마른 인간의 마음에 윤기를 흐르게 하고, 각박한 삶에 여유와 부드러움을 안겨준다. 여기에 몸을 움직여 인간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춤 예술을 빼놓을 수 없다.


수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 춤은 궁중예악으로 정제되었고, 무속신앙에 자자들고, 탈춤이나 마당극으로 드러나 있다. 여기에 서양의 발레와 현대무용이 더해져 풍성한 확장성까지 갖추게 된다. 우리 무용계도 이런 역사만큼이나 역동적이고도 개성 있는 무용인들이 적잖게 배출되는 시기가 오래 전부터 계속되고 있다. 이 같은 때 한국무용가 정혁준씨를 만나 그의 춤 인생의 향취를 맡아보자

아홉 살에 시작된 정혁준의 춤 길

정혁준은 9살 때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동네 무용학원을 처음 찾았고, 무용학원 원장과의 첫 만남에서 소고춤을 추게 된다. 홀이 좁다는 듯이 뛰어다니며 열심히 춤을 추는 어린 혁준을 바라보던 선생님은 ‘넌 천생 춤꾼이구나!’하는 말로 혁준과 첫 대면을 하게 된다.
TV를 보며 연예인들의 흉내를 곧잘 내는 막내아들을 어머니는 이미 1년 전부터 아동극단에 데리고 다녔고, 소고춤은 혁준이 거기서 익힌 춤이다. 동네 무용학원을 어머니와 함께 찾은 그 발걸음이 혁준으로 하여금 30년을 한 결 같이 춤인생으로 치닫게 한 시작점이 될 줄을 그 누가 알았으랴.

저 유명한 서정주의 ‘귀촉도’라는 시를 보면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라는 구절이 있다. 혁준처럼 춤에 죽고 춤에 사는 진정한 춤꾼에게 이처럼 딱 들어맞는 말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한恨과 신명에 취해서 제 갈 길을 열심히 가는 예인들을 생각하면 이심전심의 감흥이 절로 밀려들지 않을 수 없다.

무용을 괜히 했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나요 “아무리 힘든 일이 닥친다 해도 춤을 추면서 풀라”는 선배의 말이 늘 귀에서 맴돌았습니다. 선생님 말씀도 제 가슴에 들어있지요. ‘어깨 춤 하나라도 소질 없으면 아닌데 네가 추면 다르단다.’라는 말이요. 날마다 장구장단에 맞춰 춤집을 다듬다 보면 송글송글 맺히는 땀방울과 함께 마음이 정화되고 몸도 개운해집니다. 이튿날이면 새로운 것을 배우는 재미에 힘이 솟고요. 또 “내 새끼 잘 한다!”는 어머니의 격려도 큰 힘이 됐습니다.

서울예술고등학교 나오셨지요 네 그래요. 돌이켜 보면 예고시절은 무용에 대해서 많이 알아가는 순수한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행복했지요. 연습하면 연습한 만큼 실력이 늘고 또 세상 걱정 없이 부모님 밑에서 학교만 다니면 되는 좋은 시절이었어요. 학교에 가면 저와 비슷한 길을 가는 또래 친구들을 보면서 무용만 생각하면 됐잖아요.

대학시절은 ‘나도 선배들처럼 유명한 콩쿠르에 도전을 해야지!’하는 목표의식으로 똘똘 뭉쳐 사는 재미가 쏠쏠했고요. 춤 주제가 정해지면 음악은 무엇을 쓸까 고민에 고민을 하면서 안무를 짜다가는 드디어 완성한 맛이라니! 그 작품을 가지고 나가서 청중과 심사위원들 앞에서 춤을 춘 결과가 큰 상으로 나타난 거예요. 그게 동아콩쿠르였지요. 지금 생각해도 짜릿하고 신나는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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