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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함성호의 옛집 읽기]<1>불의 길을 다루다

우리에게는 세계인들과 같이 나눠야 할 유·무형의 문화유산이 많다. 그중에는 세계 최초도 있고, 심오한 예술미로 감탄을 자아내는 것들도 있다. 그러나 세계 최초라는 것은 언젠가 더 앞선 연대의 유물이 발견되면 그 의미가 퇴색하게 마련이다. 규모 면에서도 한국의 지형과 지리는 중국이나 다른 나라의 그것보다 더 크고 화려한 것을 수용하기 곤란하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두 가지가 남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나는 한글이고, 또 하나는 우리의 주거문화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은 전 세계의 문자 중에서 유일하게 만든 사람이 알려진 문자다.

 그러나 만든 지 600년이 넘었음에도 아쉽게도 우리가 한글로 사고하고 쓰기 시작한 것은 고작 60년 정도다. 조선시대에는 사대부들에게 외면 받았고, 일제강점기에는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글은 아직도 미완이고 완성해 가야 하는 진행형이다. 더 정확한 발음을 위해 사라진 철자들을 살려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고전을 더 많이 번역해야 하고, 서양의 개념들을 우리말로 정착시켜야 할 필요가 있으며, 더 많은 시와 소설이 실험되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주거문화는 놀랍다. 늘 보고 연구하고 직접 설계를 하면서도 놀라움은 그치지 않는다. 구들을 데우는 복사난방 방식이 처음 나타난 것이 원삼국시대인 옥저 때였다. 화기를 오래 가두기 위해 고래라는 불의 길이 방바닥 아래에 만들어졌고, 연기를 빼기 위해 굴뚝이라는 배연설비도 갖추었다. 굴뚝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서양건축에서 굴뚝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18세기다. 굴뚝은 중국건축에도, 일본건축에도 없다. 중국은 연기가 위에 머물게 해 지붕의 기와 사이로 빠지도록 층고를 높이 하고, 일본은 화로를 쓴다. 말하자면 굴뚝은 불을 공깃돌처럼 갖고 놀며 불의 길을 그렸던 사람들의 화룡점정 같은 것이었다.

 더군다나 조선 집에는 화장실도 독립적으로 있었다. 서구에서는 18세기까지 요강을 썼고 오물을 길 밖에 버리는 일이 허다했다. 숙녀들을 업어서 오물 천지인 길을 건너 주는 직업까지 생겼다. 그에 비해 우리는 기원전 2세기부터 온돌을 썼고, 오래전부터 화장실을 갖고 있었고, 태양의 남중고도로 처마의 길이를 정했으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함성호 시인·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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