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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인 이야기

소리꾼 장사익,뒤늦게 핀 찔레꽃



장사익 프로필

선린상고 졸업뒤 보험회사와 낙원동 가요학원 쳇바퀴 돌듯 3년…광주 31사단 문선대 입대후 ‘31사 봄비 아저씨’로 유명세타기도


제대후 복직하려던 직장 사라져 월급쟁이·독서실·카센터 등 25년간 자발없이 떠돌다 “딱 3년만 제대로 해보자” 다시 꺼낸 가수의 꿈

태평소 잡고 김덕수패 따라다녔지만 정작 사람들 감동시켰던건 뒤풀이 노래 한소절…그때서야 갈팡질팡했던 세월이 거름이었던 사실 깨달아

피아니스트 임동창 주선으로 신촌 예극장서 폭발적인 신고식…1995년 45세 나이로 늦깎이 데뷔앨범 발표후‘국민소리꾼’으로 다시 태어나

"춥고 더운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훨씬 많아유. 밤이 어두울수록 별빛은 밝아져유. 열에 아홉이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어도 남은 하나의 기쁨 덕분에 살아갈 만하지 않던가유?"

부러움의 감탄사를 자아내게 만드는 인생은 더러 있지만, 감동을 주는 인생은 많지 않다. 전자는 대개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유리된 무용담을 닮아 있어 헛헛한 뒷맛을 남긴다. 그러나 후자는 소박한 삶이어도 듣는 이를 숙연하게 만든다. 이는 무용담 특유의 과장된 수사 대신, 진정성이 이야기의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소리꾼’ 장사익(63)의 인생사는 후자로 수렴한다.

임진년(壬辰年)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세밑 맑고 시린 날, 서울 종로구 홍지동 소재 장사익의 자택을 찾았다. 가파른 골목을 파행하며 거슬러 오르자 ‘장사익’이란 문패를 건 붉은 벽돌집이 보였다. 약속 시간에 맞춰 왔건만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집주인은 묵묵부답이었다. 철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조심스레 철문을 열고 들어와 대문을 두드렸지만 역시 묵묵부답이다. 대문 역시 잠겨 있지 않았다.

너른 마당으로 겨울 햇살이 쏟아졌다. 마당 여기저기에 제멋대로 들러붙은 민들레 등 초본(草本)과 이끼에선 계절답지 않은 풋기가 돌았다. 담장 너머로 선명하게 펼쳐지는 인왕산 능선은 이곳의 행정구역이 서울특별시임을 잠시 잊게 만들었다. 베란다 바깥에 매달린 낡은 카세트 플레이어에선 클래식 음악을 다루는 FM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많은 자동차들이 도로를 내달렸지만, 소음은 이곳까지 닿지 않아 고요했다. 서울답지 않은 풍경에 취해 마당을 서성이며 솟대를 바라보던 기자의 머리 위로 익숙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추운데 뭐하고 계셔유? 오실 줄 알고 미리 문을 다 열어 놓았는데. 어서 올라 오셔유.”

2층 베란다에서 장사익은 특유의 사람 좋은 얼굴로 충청도 사투리를 쏟아냈다. 4집 ‘꿈꾸는 세상’(2003) 수록곡 ‘아버지’에서 “얘야, 문 열어라!”라고 외치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장사익은 얼굴 곳곳에 깊게 패인 주름으로 웃었다. 그는 이마와 눈가의 깊은 주름으로도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참으로 잘 찾아 왔구나란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미소였다. 현관 바깥으로 내려온 그는 반갑다며 기자의 손을 맞잡았다. 미소만큼이나 따뜻한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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