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서 파닥파닥 들썩거리는 팔꿈치, 까닥까닥 장단을 맞추는 턱, 발돋움하는 흰 버선이 ‘부웅’ 떠올랐다가 살포시 내려앉는다. 상모꽃(모자)이 어둠을 하얗게 수놓는다. 백의민족의 순수함과 구수한 농악가락이 감칠맛 나게 어우러지자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는 듯 절로 엉덩이가 들썩인다.
설장고 명인 이부산(60)씨의 생동감 넘치는 몸짓에는 이상한 힘이 있다. 예순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약동’하는 에너지와 ‘싱그러움’에 건성으로 시선을 던질 수 없다. 그가 새파랗게 어린 제자들 속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이유다. 미세한 떨림과 가락에도 ‘멋’이 묻어났다. 비결이 무엇일까. 5살 때 아버지 故 이준용(인간문화재)씨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장구’를 친 것이 어언 50년. 이정도면 ‘장인’을 만들고도 남을 시간이다. 하지만 ‘설장고’의 특별함을 ‘50년’이라는 숫자로 단정 짓기엔 장구에 대한 그의 애정이 크다.
“아버지께 감사하다”
지난 5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만난 설장구 명인 ‘이 부산’의 이마에는 채 닦이지 않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인터뷰에 앞서 제자들과 함께 ‘공연’을 하며신명나게 한 판 놀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설장고’ 50주년 공연을 진행할 정도로 연륜이 깊은 ‘농악인’이지만 까맣게 어린 시절 아버지와 ‘장구’를 치던 기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그 ‘신명’은 50평생 그의 마음에 뿌리 내렸다. 그는 “아버지가 이걸 하셨으니까 나도 어린 마음에 그저 장구가 좋더라. 또 아버지랑 같이 장구를 치면서 돌아다니는 것이 너무 좋았는데, 본 직업이 돼버렸다(웃음)”며 과거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50년 동안 장구를 쳤지만 ‘이걸 잘했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우리 아버지에게 너무 감사하다. 나에게 ‘장구’를 물려주신 것도 그렇고, 아버지가 왜 ‘음악’을 하셨는지 알 것 같다”고 감격에 벅차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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