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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인 이야기

대금 명인 원장현 일가



 

원장현 프로필  원완철 프로필  원나경 프로필

과연 얼음장 밑으로도 물은 흐르는 것일까. 북한의 장성택 처형 등으로 초래된 삼엄한 정치의 시간을, 문화의 부드러운 시간은 어떻게 관류해 나갈까. 대를 이어 국악의 업을 감당해 오고 있는 대금 명인 원장현 일가를 만나 그 답을 구해 보았다.

냉각 일변도로 치닫고 있는 남북관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기자는 국악이 이 상황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질문했다. 민족의 공감대가 여전히 작동하는, 몇 안 되는 분야일 것이라는 강력한 느낌에 끌렸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마치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모든 가족들은 차분히 각자의 견해를 밝혀 나갔다. 네 개의 뜻이었지만 모이면 커다란 하나가 될 것 같은….

"완전히 다른 장르의 음악이다. 아예 토리(성음 체계)가 다른, 또 다른 지역의 음악"이라는 아들의 말에 딸은 "우리의 국악도 많이 변했다"며 두 진영의 현실적 괴리를 새삼 확인했다. 자신의 적통을 잇는 후배들의 말에 아버지 원장현은 "이제 북한은 악기 자체가 다르다"며 " 중국식 개량 악기에 민요마저 서양식으로 발성한다"고 덧붙였다. 반 세기 넘게 금 긋고 살아온 두 집안의 판이한 내면을 새삼 느낀다.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이들의 시간 계산법은 다른 모양이다. 부모는 문화의 관점으로 한번 생각해 보자고 은근히 자식이자 후배들을 종용하는 눈치다. "그래도 서로 소통 가능한 부분을 찾아야 한다"는 아내의 말을 남편은 "지난해 연변 가서 연주했을 당시 퉁소는 변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받쳐 준다.

네 식구 모두가 국악에 대한 나름의 견해를 가진 원씨 일가. 저 같은 견해가 주제 넘지 않다. 부인 조경주(59)씨는 해금ㆍ가야금ㆍ한국무용을, 아들 완철 씨(39)는 대금ㆍ아쟁ㆍ태평소ㆍ북ㆍ장고를, 딸 나경(28)씨는 해금ㆍ가야금ㆍ경기 민요를 각각 장기로 한다. "음악이니 (남과 북은)서로 소통 가능할 거예요." 어머니는 끈을 결코 놓지 않을 태세다.

유명한 대금에다 거문고ㆍ태평소ㆍ아쟁ㆍ가야금까지 대가의 기량으로 주무르는 원장현씨까지 합한다면 이들 가족은 국악 오케스트라가 부럽지 않다. 시너지 효과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지경이다. "우리는 특별히 연습할 필요가 없어요. 곧바로 올라가서 하면 끝나죠." 완철씨의 말에 어머니는 "보통은 짜여진 음악에 춤이 따라가는데 내 경우는 춤에 음악이 따라온다며 댓구를 만든다. 왁자하니 웃음꽃이 핀다.

헌법재판소 옆에 있는 그의 금현(琴玄)국악원은 그 자체로 완전히 자족적인 공간이다. 1층 카페는 공연장 , 2층은 혼자 쓰는 공간(농담조로 자칭 '원장현류 대금 산조 본부' ), 지하가 금현국악원이다. 지하 1층은 훌륭한 연습 공간.

그 '본부'는 주인의 취미가 이미 호사가의 수준은 아니라는 사실을 웅변한다. 암펙스, 테크닉스 등 다양한 오디오에 다양한 전문 녹음기(릴 테이프, 디지털), 16채널의 콘솔 등은 가히 전문가급이다. "노년에 전수관을 지은 뒤 거기다가 기념관 하나 붙여 전시할 것들이죠."고음반 복각에 선구적 역할을 한 음반사 신나라 레코드사의 자문위원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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