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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민의 국악세상/국악칼럼

한국음악의 정체성을 찾아야



최종민 (철학박사, 국립극장예술진흥회 회장,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교수)


사람은 반성할 줄 아는 존재이고 반성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을 때 새로운 삶이나 창조적인 삶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도 간단해 보이는 문화에 대한 깨달음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세종께서는 우리가 오랫동안 사용해온 外來의 漢文을 우리글처럼 한국화하고 표준화할 수 없을가 하고 많은 학자들과 함께 심혈을 기우려 연구한 것으로 안다. 그런데 연구와 토론을 거듭하는 동안에 세종은 중국글은 중국말을 적는 글이어서 중국말과 다른 우리말을 그대로 적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듯 하다. 그것이 훈민정음 서문 초두에 잘 나타나 있다.

중국문화의 정체성과 한국문화의 정체성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정체성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으면 그 다음에 취할 태도는 간단하게 결정될 수 있다. 우리말의 정체성에 맞는 우리글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훈민정음이라는 우리글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일에대한 반성과 깨달음이 위대한 창조를 낳게 된 것이다.

국악관현악단의 설치와 운영에 대해서도 많은 반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대의 국악관현악단은 서양의 심포니오케스트라를 흉내내어 만들어진 것이다. 그 전에 김기수의 송광복 같은 작품이 있긴 했지만 그것도 서양음악을 부러워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 이후 한국의 국악관현악 운동은 그 조직․규모․운영방식․작품․연주에 이르기 까지 거의 모든 것을 서양 관현악단의 그것에 준해서 하게 되었다.

여민락’이나 ‘수제천’과 베토오벤의 교향곡은 엄청나게 다르다.  악기도 다르고 선율도 다르고 박자나 리듬도 다르고 연주하는 방식도 다르다.  기존의 우리 합주와 서양음악의 합주는 그렇게 다르다.  공통된 점은 여러사람이 악기를 가지고 함께 음악을 만들어 낸다는 것인데 그것도 서양은 지휘자 한 사람의 음악을 만드는 것이고 우리는 연주자 모두의 음악을 만드는 것이니까 그것마저 다르다. 이 처럼 다르게 발달한 것은 피차의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고 문화란 서로 다르게 발달하여 다양성을 갖는 것이 특징이다.                                       

문화는 다양한 것이기 때문에 문화를 가꾸는 방법도 그 다양성을 최대한 살려서 서로 다른점을 부각시킬 때 문화가 발달하는 것이다.  이것이 저것을 흉내내고 저것이 이것을 흉내내면 이것도 저것도 안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영어는 영어대로 가꾸고 우리말은 우리말대로 가꾸어야지 영어와 우리말을 뒤 섞어놓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래서 문화는 다른점․구별되는점․ 차별성․특징․개성등이 생명처럼 되어있는 것이고 그것을 살리면서 가꾸어 나갈때 문화가 발달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국악관현악은 어떤가?  거의 모든것을 서양관현악처럼 하고 있지 않은가?. 제일 중요한 작품이 서양음악어법으로 서양음악양식을 빌어 작곡한 것이 대부분이다. 악기만 국악악기를 사용하지 지휘자가 연습시키는 과정이나 사용하는 악보까지 서양의 기보법을 쓰고 있다.  악기까지 서양악기 비슷하게 바꾸어가며 서양음악에 가까운 국악관현악을 할려고 하는 의욕을 보이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 아닌가?.

국악악기를 써야할 타당한 이유마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악기란 음악을 하는 도구이지 그 자체가 음악의 목적도 아니다.  국악악기로 서양음악의 효과를 내고 싶고 국악관현악으로 서양음악식 작품을 하고 싶으면 서양악기를 써야지 왜 국악악기를 쓰는가?.  예술에는 완성도가 중요한 것이고 예술계에는 1등만 살아 남을 수 있는 것이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국악악기로 서양음악식 음악을 연주하는 관행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혹자는 우리의 현실이 그렇게 만들고 있다고 하고 오히려 이런말 하는 나를 현실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비난할런지 모른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는 우리다운 우리의 <음악언어>가 있고 그것이 우리의 음악사상과 결합하여 발달시킨 대단히 수준높은 우리의 <음악미>가 있다. 우리의 음악언어로 우리의 음악미를 만들어내는데 도구로 쓰이는 것이 우리의 악기이다.  그래서 악기는 우리의 음악미를 표현하기에 좋도록 발달한 것이지 우리의 지능이 모자라서 악기가 덜 발달한 것이 아니다. 악기만으로 따진다면 악기는 하나의 도구이기 때문에 음악가가 우리의 음악미와 다른 서양식 음악미를 추구할 때에는 악기를 그렇게 바꾸든지 아예 서양악기를 사용하든지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우리의 현실에 대한 인식은 나라고 하여 다른 사람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본다. 다만 이런 현실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의 작곡가들이 우리의 음악어법을 사용하여 우리의 음악미를 구현하는 작품을 작곡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 주었으면 한다. 음악어법과 음악미라는 필요조건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없을 때에는 음악어법을 우리의 음악어법으로 사용하라고 권하고 싶다.  음악미란 경우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지만 음악어법만은 유사이래 우리의 음악어법을 계속 유지 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음악역사에는 중국음악을 수입해서 사용하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 중국음악어법의 궁중음악을 작곡하여 쓰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많은 중국음악어법의 음악이 지금은 ‘문묘제레악’ 하나만 남기고 다 없어지지 않았는가?.  중국에서 들어온 해금이나 아쟁등은 우리음악어법을 잘 표현하면서 우리악기로 자리잡았지만 이질적인 중국음악어법의 음악은  이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다 없어져 버렸다. 그 만큼 음악어법은 음악의 문화적동질성 (정체성)과 관계가 깊은 것이다.  이 땅의 음악은 우리문화와 동질관게에 있는 우리의 음악어법으로 된 것이 지속되고 외래음악일 경우 우리음악과 동질적 요소가 많으면 오래 살아 남지만 이질적요소가 많으면 한국식 음악어법으로 바뀌어 존속하던지 아니면 없어지고 만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다가오는 21세기 정보화 시대는 동시에 문화경쟁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문화경쟁의 시대에는 고유성이 있는 자기문화를 가지고 경쟁하는 것이지 남의  문화를 배워가지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각국은 자기나라의 문화언어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중인데 우리는 국악관현악단 마저도 우리음악언어를 버리고 남의 나라 음악언어로 음악행위를 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우리의 음악언어를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음악의 기본 조건이고 그 언어로 우리의 음악미를 표현할 때 완성도 높은 음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악기도 마찬가지이다.  국악악기로 애국가를 연주하는 것이나 풀륫으로 청성곡을 연주하는 것은 발레 동작으로 살풀이 춤을 추는 것 만큼이나 완성도가 떨어져서 좋지 않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연주행위는 감동을 줄 수 없다.  우리의 국악관현악단이 무슨 무슨 명분을 내걸고 연주회를 해도 감동의 순간의 극히 적은 것은 완성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우리 국악관현악단들이 당장 어떻게 해야 좋을까?.  우선은 생각을 바꾸어야 된다.  지금까지의 관행이나 음악행위에 대한 반성과 함께 패러다임을 바꾸는 사고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특히 서양음악에 대한 열등감을 떨쳐버리고 당장은 불편하더라도 우리의 음악언어를 가꾸고 우리의 음악미를 표출할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형편을 핑계대고 편의주의로 적당히 땜질만 하면서 세월을 보내는 안일한 태도는 버려야 한다.  환골탈퇴의 거듭남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생각을 바꾼 다음에 해야 할 일은 구체적으로 정체성이 있는 작품을 개발하는 일이다.  수제천과 같은 고양된 정서를 표현하는 작품도 시도해 보고 시나위 처럼 흐드러지는 정한을 절절하게 표현하는 작품도 시도 해 볼 일이다.  줄풍류와 같은 음악도 시도해 보고 가곡이나 삼현육각과 같은 음악도 만들어 볼 일이다.  종합적으로는 굿판과 같은 공연물이나 제례악과 같은 공연물도 만들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이렇게 권하는 이유는 우리에게는 아직 버젓이 살아있는 우리음악의 모델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것들을 모델로 하여 작업을 하면서 우리의 현실에 맞는 우리스러운 작품을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다.  서양음악이론에 종속된 음악행위는 되도록 줄여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개발할 수 있는 작품은 얼마든지 다양하게 전개 될 수 있고 그야말로 무한히 열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가능성을 먼저 알고 각 국악관현악단들은 차별화 전략을 시도해야 되리라고 본다.  과거에도 정악위주의 연주단체와 민속악위주의 연주단체는 따로 있었다.  앞으로도 각 악단은 자기 악단의 여건에 걸맞으면서 가장 가능성 있는 작품장르를 몇 가지 선택하여 최고의 완성도 있는 음악을 만들어 가도록 계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된다.  요즘 막 쓰러지는 우리나라 기업들처럼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면서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악단은 도태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지나칠 수 없는 것은 국악관현악단이 전통음악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기본은 전통음악을 하는 악단이어야 하고 새로운 시도로 창작품을 해야지 기왕에 있던 좋은 음악을 뒷전에 미루어 두고 완성도가 떨어지는 서양식음악만 계속하게 되면 악단의 수준 자체가 그렇게 떨어지고 만다.  때문에 악단 안에 민요반주 전문 가곡반주 전문 무용반주 전문등의 소 그룹의 운영도 필요하고 악단의 편성자체도 여러가지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조직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단순한 서양식 국악오케스트라가 아니라 국악악단의 다양하고 종합적인 면모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각 악단의 차별화에 앞서서 국악악단의 서양 악단과의 차별화 부터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21세기는 오리지낼리티(고유성)가 있는 문화여야 각광을 받을 수 있는 시대이다.  우리의 독창성이 강하면서 수준높고 다양하게 발달한 전통음악이 빛을 발하게 될 것이고 그런 음악언어로 된 새로운 작품의 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미래를 대비한 우리의 국악관현악단의 전략이나 구조조정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에 대한 해답은 하나도 둘도 우리음악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생각을 바꾸고 우리의 음악언어와 우리의 음악미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고 溫古而知新의 정신으로 항상 현재성이 있는 우리음악을 창출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