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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가야금이나 판소리 어느 하나만 전공하는 것이 보통이다. 공부하는 방식도 서양음악 공부하는 학생들처럼 이 음악 저 음악을 단계적으로 하나하나 공부하곤 한다. 성악이나 기악이나 자기 분야를 작품별로 하나하나 공부하여 음악적으로 성숙해 가도록 제도가 되어있다. 이것은 옛날 우리나라 음악교육 제도와 다른 것이다.

옛날 음악가문에서는 어린 아이에게 먼저 소리를 가르쳐 보고 그 다음 기악을 가르쳐 보는 것이 보통이었다. 가르치는 내용도 매일 비슷하면서 다른 내용을 이것저것 가르치며 ‘음악 속’을 깨닫도록 유도하는 식이었다. 작품을 가르치는 것 같지만 작품을 고정되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늘 자기 식으로 재창조할 수 있도록 음악언어와 작품 짜는 법을 가르쳤다.

그렇게 교육 받은 사람들은 스승에게 배운 작품을 똑 같이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개성을 살려 스승의 작품과 다른 자기 것을 만들어 낼 줄 알게 된다. 이런 교육 탓에 과거의 음악가(국악인)들은 창조역량이 있었고 늘 현장에 맞는 신선한 음악을 만들어 연주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 이후 음악에 대한 관념이 바뀌고 여류 국악인이 많아지면서 전통적인 음악교육 보다 신식 교육방법이 유행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창조적으로 현장에 맞는 음악을 척척 연주하는 국악인이 아주 드물게 되었다.

정철호(1927년생)는 판소리 고법의 인간문화재다. 타이틀로만 보면 그는 고수일 것이 분명하지만 그는 작곡의 명수고 아쟁산조의 창시자다. 그는 해남의 음악가문에 태어나서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아버지에게 판소리를 배웠고 임방울을 찾아가 그의 제자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소리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거문고도 배우고 고법도 배웠다. 음악가로 활동하는데 필요한 예능을 두루 배운 것이다.

공부를 다 마치고 돈 벌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임방울 단체에 있으면서 일하는 틈틈이 선생님에게 소리를 배우고 역시 돈 버는 활동을 하면서 거문고도 배우고 고법도 배웠다. 조선창극단에 있을 때에는 오태석, 박녹주, 조상선 같은 대가들과 함께 단체생활을 했는데 창극 작곡을 주로 하던 조상선이 정철호에게 작곡을 가르치기도 하고 작곡한 악상을 암기하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래서 정철호도 작곡을 하게 되었고 조상선이 월북한 한국동란 이후는 창극이나 여성국극의 작창을 정철호가 도맡아 할 정도로 창작활동을 많이 했다.

지금 정철호는 고법의 인간문화재인데 그것은 과거 고법을 배우고 고수로 활동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얻은 타이틀이기도 하지만 판소리를 배우고 창극 활동을 많이 했으니 저절로 얻어진 기능이기도 하다. 작창이나 작곡을 할 수 있는 것도 조상선이 작곡하는 것을 보고 배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판소리와 기악을 배우면서 국악의 ‘음악 속’을 터득하여 음악언어를 다양하게 구사할 줄 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니까 아쟁이라는 악기의 소리를 듣고 그것으로 산조를 짜서(작곡) 연주할 생각을 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정철호는 전통방식으로 음악을 배웠고 음악적인 환경에서 생활하면서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했기 때문에 많은 업적을 낼 수 있었다. 그가 특히 업적을 쌓은 분야는 시대정서를 반영한 의식 있는 노래를 많이 작곡한 것이다.

열사가 라는 작품에는 안중근의사, 윤봉길의사, 이준열사, 유관순열사, 녹두장군 전봉준 등을 내용으로 다루었는데 길지 않지만 열사들의 행적을 담는데 부족함이 없는 좋은 작품이다. ‘성자 이차돈’은 창극으로 작곡하여 성창순, 조상현, 조순애 등이 입체창으로 녹음했는데 감동적인 음반이 만들어졌다. 김대중의 ‘옥중단시’도 음반으로 제작하여 내었고 광주 민주항쟁을 다룬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는 광주 시민들을 눈물바다로 만든 작품이었다. ‘94년에는 내가 대본을 쓴 ‘안중근’에 곡을 붙여 안숙선이 노래한 신작판소리 음반을 내기도 했다. 신민요 ‘인생은 고해라’, ‘봄 타령’ 등도 작곡하여 유행하게 하였다.

정철호는 평생 음악만 하고 살아왔다. 지금 한국나이 80이지만 늘 새 작품을 하고 싶어 하고 그런 꿈으로 가득 찬 생활을 하고 있다. 고법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큰 무대에 나가 고수로 활동하기도 하지만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새로운 일을 기획하고 추진하고 작곡하는 일 같은 것이다. 본인이 생각하는 작품을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어떻게 하면 그 작품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을 궁리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런 아이디어를 하나하나 실현하며 바쁘게 산다.

정선생님을 만나보면 그의 모습이나 생각은 항상 소년 같고 꿈을 가진 희망 찬 사람 같다. 노인의 나이지만 노인이라는 느낌을 거의 가질 수 없다. 전통음악 밖에 배우지 않은 사람이지만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창조적인 생활을 한다. 정철호가 보여주는 이런 삶의 태도가 바로 전통음악교육의 효과라고 생각한다.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음악으로 표현하며 사는 삶이고 늘 현재의 상황에 맞는 음악을 창조적으로 만들어 가며 사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철호는 다양한 국악활동을 활발하게 하며 풍부하게 살아가고 있다.

최종민 (철학박사, 국립극장예술진흥회 회장,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교수)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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