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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민의 국악세상/국악칼럼

중국음악과 한국음악의 본질적 차이



나는 어려서 한문을 배웠다. 어머니께서는 아침에 일어나서 글(한문)을 외우지 않으면 아침을 차려주시지 않을 정도로 매일 한문공부를 독려 하셨다. 그 덕분에 한문을 배운 것이 나의 일생에 큰 보탬이 되었는데 좀 더 열심히 배우지 않은 것을 늘 아쉽게 생각하고 후회스러워 한다.

한문은 그 글 자체가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깨달음의 양이 축적되어 간다. 어쩌면 글을 통하여 깨달음의 기쁨을 맛보기 때문에 옛날 선비들은 끼니를 굶으면서도 독서삼매경에 빠질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런 나의 한문경험은 나의 음악생활에도 전이(轉移)되어 음악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는 재미로 음악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악은 한문과 통하는 면도 많지만 체험을 계속할수록 많은 깨달음을 갖게 한다. 그래서 재미있고 재미있으니까 계속하게 되고 그러니까 나는 참 행복하게 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있을 당시 동료들과 함께 중국어를 공부한 적이 있다. 중국어를 배우면서 깨달은 것은 중국어가 우리말과 전혀 다르게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말의 70%이상이 한문성어이기 때문에 중국말과 한국말이 비슷한 것으로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언어의 어법은 전혀 다른 것이 중국말과 한국말의 관계였다. 말과 음악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발달한다는 것이 나의 시각이고 악학궤범의 “노래는 말을 길게 하여 음률에 맞춘 것이다.”라는 구절도 그러한 나의 생각과 같은 맥락이므로 중국말과 한국말의 차이를 깨달으면서 바로 중국음악어법과 한국음악어법의 차이를 깨닫게 되어 꽤 큰 기쁨을 맛 볼 수 있었다.

중국말은 성조(聲調)가 있다. 사성(四聲)이라 하여 네 가지 성조로 나뉘는데 1성 2성 3성 4성하는 것이 바로 그 성조라는 것이다. 성조는 중국어에서 매우 중요한 것으로 같은 소리라도 성조에 따라서 뜻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같은 “마”라도 성조에 따라서 뜻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뜻이 달라지면 한문의 글자도 달라진다.

그러니까 그냥 한글로 “마”라고만 써 놓으면 중국어로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게 되어있다. 반드시 성조의 표시가 있어야 한다. 그 만큼 성조가 중요한데 그 성조는 따지고 보면 음의 높낮이(高低)와 관계가 깊다. 4성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다섯 높이의 음을 편의상 계명의 ‘도’‘레’‘미’‘화’‘솔’로 대신하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성은 ‘솔’‘솔’과 같은 식이어서 제일 높은 음역이고 2성은 ‘미’에서 ‘솔’쪽으로 밀어 올리는 소리이다. 3성은 ‘레’‘도’‘화’쯤으로 휘어져 내려오다가 올라가는 소리이고 4성은 ‘솔’‘도’와 같이 고음에서 저음으로 꺾어 내리는 소리이다. 결국 4성은 음의 높낮이(Pitch)와 관계가 깊은 것이다.


중국말은 같은 “마”라도 1성은 媽로 어미를 의미하고 2성은 麻로 삼베를 의미하고 3성은 馬로 타는 말을 의미하고 4성은 입구(口)두개 밑에 말마(馬)자를 쓴 글자로 꾸짖을 마 욕할 마로 읽는다. 그러니까 성조에 따라 뜻이 완전히 달라진다. “의”라는 음도 마찬가지이다. 1성은 衣로 옷을 가리키고 2성은 夷로 오랑캐를 뜻하고 3성은 椅로 의자를 뜻하고 4성은 意로 마음에 의도한 뜻을 의미한다. 음악 하는 사람이 들었을 때에는 음의 고저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음악도 고저중심으로 발달하였다. 중국의 방송을 들어 보라. “땅 땅 다다당 땅 땅 당 땅” 하면서 온통 한 박 단위로 진행한다. 우리음악의 리듬과는 전혀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작곡된 중국음악어법의 작품을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문묘제례악이 바로 그런 작품인데 그 음악은 하루 종일 黃 - , 南 - , 林 - 하는 식으로 같은 길이로만 연주한다. 다른 길이는 일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악보를 만들 때 길이를 표시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율명(律名)만 적어놓으면 악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말은 어떤가? 같은 소리라도 길이가 달라지면 뜻이 달라진다. 길게 “장-”하면 長이나 壯등의 글자를 써서 어른이나 씩씩한 것을 뜻하게 되고 짧게 “장”하면 場과 같은 글자를 써서 장소를 뜻하게 된다. 말하자면 같은 소리라도 길고(長) 짧음(短)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 그래서 음악도 장단중심으로 발달하였다. 한국음악은 장단만 있으면 되는 음악도 있다. 농악이 바로 그런 음악이다. 단-따 단-따 단-따 다단- / 다단- 다단- 단-따 다단- / 하고 쳐 나가는데 그 자체로서 훌륭한 음악이 된다. 장음과 단음의 비율은 2 : 1쯤 되는 것이어서 우리음악의 진행내용은 온통 장음과 단음의 조합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농악은 장단만으로 이루어지는 음악이지만 노래도 가곡이나 시조는 5박 계통 장단과 8박 계통 장단으로 되어있는데 그것이 다 장음과 단음의 결합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음악이다.

중국음악과 한국음악의 기본적인 차이점은 중국말과 한국말의 차이처럼 중국음악이 고저중심의 음악인데 비하여 한국음악은 장단중심의 음악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중국의 음악이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화하는 과정도 고저중심의 음악어법이 장단중심의 음악어법으로 바뀌는 것이다.

고려 때 들어온 보허자(步虛子)나 낙양춘(洛陽春)이 그런 식으로 한국화한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사실을 알면 전통음악 가운데 중국음악어법의 음악과 한국음악어법의 음악을 구별하는 것은 아주 간단히 해결된다. 같은 유교제례의 음악이지만 문묘제례악은 중국음악어법으로 작곡한 음악이고 종묘제례악은 한국음악어법으로 작곡한 음악이다. 세종 때에는 유교음악을 중국식으로도 작곡할 수 있었고 한국식으로도 작곡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 한국음악어법으로 작곡할 수 있는 음악가가 얼마나 있을까? 우리음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음악어법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고 우리음악어법을 발견하는 것은 더욱 중요한데 그런 인식이 부족한듯하여 늘 안타까운 마음이다. 세종께서 훈민정음을 만들게 된 것은 우리말과 중국말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동기이고 정간보를 만든 것은 그런 말을 바탕으로 발달하는 우리음악과 중국음악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동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서양말과 우리말의 다른 점을 아는 것이고 그런 말을 바탕으로 발달하는 서양음악과 우리음악의 다른 점을 깨닫는 것이다. 그런 것을 제대로 알아야 한글의 소중함이나 국악의 가치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종민 (철학박사, 국립극장예술진흥회 회장,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