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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경상도 사투리 버전'을 실험하다




"그때 흥보가, 죽게 생긴 아새끼를 구할라꼬."

어린이 명창대회에서 흥보가를 부르던 어린 소리꾼은 그만 깜박했다.

스승은 분명 "그때에~ 흥보가, 죽게 생긴 자식들을 구할 냥으로~"라고 가르쳤는데 어린 소리꾼은 자기도 모르게 경상도 사투리가 튀어나온 것이다. 심사위원과 관객들의 폭소가 쏟아졌다.

경상도 아이가 전라도 사투리가 진한 '아니리'(판소리에서 가락을 붙이지 않고 이야기하듯 엮어 나가는 사설)를 배운 대로 풀어내지 못한 것이다.

경남 산청군 매화정국악연수원에서 판소리를 배운 아이가 전라도에서 열린 경연대회에 나가 겪은 해프닝 아닌 해프닝이다. 그렇지만 지금 매화정에는 산청의 판소리가 자라나고 있다.

판소리는 주로 전라도 지방에서 전승된 가락이 많이 남아 있기에 '전라도 특산물'로 여겨진다. 하지만 판소리는 어느 특정 고장의 전유물이 아니다. 500년이 넘은 우리 민족의 전통 가락이다.

"전라도 전승 가락 많지만 특정 고장 전유물 아니죠 서편제·동편제·중고제 흔히들 유파 구분하지만 실제 무의미한 나눔이죠 부산·김해·산청·경북 등 영남의 젊은 소리꾼들 지역 특색 살린 가락에 젖먹던 힘까지 내봅니다"

2003년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된 판소리. 우리 소리를 직접, 한 번이라도 제대로 들어 본 사람이라면 그 매력에 빠지고 만다.

판소리는 인간세상 희·노·애·락이 녹아든 한 편의 드라마. 관객이 배꼽을 부여잡고 웃으며 쓰러지게 했다가 온몸의 눈물을 모두 뽑아내기도 한다.

위대한 전통유산이지만 관련 문헌은 턱없이 부족하다. 소리로 표현되는 순간예술이기에 음반이나 영상이 발달하지 않은 근대 이전에는 오직 구전될 뿐이었다.

판소리는 흔히 애절함이 돋보이는 서편제, 우람차고 씩씩한 동편제로 크게 나뉜다. 충청과 경기지방에서 불리던 중고제도 있다.

세간에서 이런 분류를 하는 까닭에 판소리의 특색이 유파 구분과 온전히 일치할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다르다.

부산시 국악관현악단 수석단원인 박성희 명창은 "실제 소리를 하는 사람에게 동편제나 서편제로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하나의 판소리 마당에서도 어떤 대목에서는 종지음을 길게 빼는 서편제식 창법을 써야 하고, 또 어떤 장면은 짧게 끊어 힘을 주는 동편제식 소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을 노래로 옮기다 보니 전라도 사투리로 부르는 판소리가 영남에서는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경상도 사투리로 판소리를 불러 보자는 것.

대구교대 국악과 이인수 교수가 주축이 된 '경상도사투리 판소리 연구회'는 아니리와 창을 경상도 사투리 버전으로 바꿔 부르며 호응을 받았다.

경상도 사투리 판소리를 부른 경북도립국악단 상임 단원 조경자 씨는 "어려운 한자어나 전라도 사투리로 할 때와 달리 경상도 사투리 판소리에 지역 관중의 호응이 큰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9년 경상도사투리로 수궁가 공연을 했던 김해 연지국악원 박성진 대표는 "젊은 소리꾼으로서 현대적 감각에 맞춰 해 본 하나의 실험이었다"며 "막상 지역 사투리로 재창작을 해서 불러보니 편하고 좋았다"고 말했다.

경상도식 판소리는 그러나 정형화되기엔 아직 많이 부족한 듯 보인다. 현재의 판소리는 전라도 말을 음악적으로 가장 잘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많은 세월과 시도들이 진행된 이후에야 경상도 사투리 판소리의 정형화가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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