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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인 이야기/박경랑

한국무용의 비너스 - 박경랑




2002
년 어느 야외 공연에서 박 경랑의 살풀이를 촬영하던 방송국 카메라맨 두 사람은 아주 새로운 기분을 느꼈다. 그녀의 춤은 남자의 마음 깊이 숨어있는 작은 불덩이를 활활 태워 화염이 온몸을 감쌌던 것이다. 그 들은 박 경랑의 춤이 일반 한국 무용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느낌의 정체가 무엇인지 분간하지는 못했다.

당신의 춤이 섹시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모른다.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춤은 하체가 여성 춤이라고 할 수 있다. 발 디딤이 섬세하고 허리 놀음이 많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신체의 미세한 세포까지 움직이려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작을 하다가 만다. 팔을 뿌릴 때도 손목만 까딱한다. 그러나 힘이 몸통에서 팔을 지나 마지막에 손목을 뿌려야 한다. 몸 기운이 서서히 손목에 전달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언제 무용을 시작했는가? 발레를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이다. 무용은 네 살 때부터 마산에서 유치원에 다니며 시작했다. 마산 월영 초등학교. 마산 여중, 마산 여고를 나와 세종대에서 발레를 전공했다. 이화 여대 출신인 김 청자 교수에게 배웠다. 대학 시절 발레 공연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발레도 잘 했지만, 한국 무용에 더 관심이 있었다. 내가 무릎이 많이 나왔다. 발레는 체격 상의 문제로 포기 하고 한국 무용으로 전환했다.

대학 졸업 후 활동은? 1984년도 졸업하고 경남 도립 무용단(지금 창원 시립 무용단)에 들어갔다. 한국 무용을 계속했기 때문에 한국 무용단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내 춤을 추고 싶어서 88년에 무용단을 나와, 89년에 부산 사직동에 무용 학원을 차렸다. 그 당시 안무자는 정 양자. 이 경애이다. 전국 8개 시립 무용단 주역 무용수 인터뷰를 객석에서 했다. 거기에 나도 들어갔다.

한국 무용을 누구에게 배웠나? 부산은 외가이다. 아버지도 토성동에서 공장을 하셨다. 방학 때 황 무봉에게 무용을 배웠다. 부산에 와서 김 진홍의 공연을 보고 저 분에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 진홍 학원에는 90년도 부산에서 학원 차리고, 결혼하고, 애기 낳고, 다니기 시작했다. 승무, 살풀이, 검무, 지전춤 등을 배웠다. 90년대 중반부터 강 옥남에게 교방춤을 배웠다. 김 현자 안무일 때 부산 시립 무용단 객원으로 출연한 적도 있다.

대학까지 발레를 한 것이 한국 무용을 하는데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발레나 한국 무용은 춤의 원리가 동일하다. 나는 발레를 했기 때문에 기초가 좋다. 하체의 힘이 좋다. 발 동작의 업다운이 좋다. 나는 무릎 굴신을 발목을 접으며 한다. 발목을 접으면 무릎이 저절로 굴신이 된다. 무릎만 굽히면 펄떡펄떡 하게 된다. 한국 무용만 했다면 지금처럼 굴신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수상경력은? 전주 대 사습놀이에서 1995년에 5번째 나가서 장원을 받았다. 1995년 장원하고 서울 국립 극장에서 기념 공연을 했다. 대구 국악제에서도 대상을 받았다. 상을 많이 받았다. 다른 사람들은 상에 미친 년이라며 비난하지만, 목표가 있어야 연습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이 대회 저 대회에 참가했다. 장관 상을 5, 1996년 국무 총리상, 1997년 대통령상(서울 전통 예술 경연대회)을 받았다.

대회에서 무슨 춤을 추었나? 대회에 나가면 이 매방 류를 추었다. 다른 춤을 추면 떨어진다. 1997년부터 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당신의 춤은 한국 무용의 주류와 다르다. 어디서 차이가 나는가? 나는 호남류와 영남류를 겸비하려 한다. 호남류의 철학은 아름다움과 기교이다. 영남류는 흥과 신명이 깃들인 춤이다. 호남류는 미를 추구하고 곱게 춘다. 영남류는 시원하고 투박하지만, 흥의 표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 춤은 호남의 안방춤과 영남의 마당춤을 통합하는 춤이다. 그러니 내 춤을 단순히 섹시하게만 보지 말아 달라.

박 경랑의 춤에는 여성이 생동하고 있다. 여자의 춤에 여성스러움이 나타난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 무용가 대부분은 여자이지만 그들의 춤에는 여성이 없다. 그들의 춤에는 여자의 환희와 슬픔이 없고, 그냥 인간의 막연한 한과 기쁨만 있는 것이다. 그런 중성의 춤과 달리 박 경랑의 춤은 여성의 매력이 폭발한다. 그래서 그녀의 춤을 보는 남자 관객은 남성이 되며, 여자는 여성이 된다. 비너스가 여성의 상징이라면 박 경랑은 한국 무용의 비너스인 것이다.

[예술부산
. Vol. 67. 2010. 5/6. 48-49쪽]

(배 학수 --> http://blog.naver.com/baehaksoo/1201308705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