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악인 이야기/유금선

#국악 에도 '비트박스'가 있다! 구음의 명인, 마지막 동래 기생 유금선 (동래학춤 구음 무형문화재)



 

<앵커 멘트>
입으로 악기 소리를 내면서 하는 연주를 요즘 음악에선 '비트박스'라고 하죠.
그런데, 우리 국악에도 '비트박스'가 있습니다. 이름은 달라서, '구음'이라고 하는데요.

김기흥 기자가, 이 구음의 명인을 만났습니다.

김 기자, 저는 구음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요.
어떤 느낌일까 참 궁금한데요,어땠습니까?

<기자 멘트>
끊어질 듯 하면서도 이어지는 애간장 녹이는 소리라고 하면 될까요?

구음은 단순히 입으로 악기 소리를 흉내 내는 것 이상의 그 무언가를 담고 있었는데요.

구음의 달인이라고 불리는 마지막 동래 기생의 그 소리를 지금부터 들어보겠습니다.

지난 16일, 공연을 하루 앞두고 연습이 한창이었는데요, 40년 만에 함께 무대에 오른다는 긴장감으로 꼼꼼히 무대를 점검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녹취> "얼씨구 잘 친다"

입으로 전통악기 소리를 만들어 내는 구음보유자, 유금선 씨, 흥겨운 장구소리에 입에선 절로 구음이 흘러나오는데요

<인터뷰> 유금선 (동래학춤 구음 무형문화재): "장단에 딱딱 맞춰서 치니까 잘 치는 것이에요. (장구는) 가락만 친다고 해서 잘 치는 게 아니에요."

전통악기 뿐 아니라 기타소리까지 입으로 음표를 짚어가며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한복까지 곱게 차려입고 공연 전 최종 리허설이 진행됐는데요,

무대에 오르면 언제나 50년 전, 그 날로 돌아가곤 합니다.

<인터뷰> 유금선 (동래학춤 구음 무형문화재): "20대 초반~35세까지는 화려했어요. (당시에는) 교양을 갖추고, 가무도 갖춘 사람이 귀한 손님의 자리에 함께 앉을 수 있었어요."

열다섯의 나이로 기생조합이었던 권번에 입소하며 기생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인터뷰> 유금선 (동래학춤 구음 무형문화재): "돈도 많이 벌었어요. 한 시간을 놀아도 50시간, 100시간으로 늘려서 전표를 끊어주는 사람도 있고, 쩨쩨한 사람들은 딱 즐긴 시간만큼만 끊어주는 사람도 있었어요. "

그녀의 구성진 노랫가락은 인기와 부를 채워줬지만, 한껏 흥이 오른 자리가 끝난 뒤, 기생이라는 신분이 가져다주는 서글픔은 피해갈 수 없었다고 하는데요,

<인터뷰> 유금선 (동래학춤 구음 무형문화재): "혼자서 흐느껴 울 때도 있었어요. 내 처지와 상대방 처지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으니까. 너무 사랑해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우리만 우는 거죠."

결혼 생활 22년, 일찍 세상을 떠난 남편을 가슴에 묻고, 이제는 후학양성에 힘쓰며 살아가는 소리꾼 유금선 씨.

지난 17일, 그 동안 열심히 준비한 공연이 서울에서 열렸는데요,

<녹취> "(젊었을 때는) 예쁜 얼굴은 아니었어도, 꾸미면 봐줄 만했는데, 이제는 나이 먹고 늙어서 (화장도) 잘 안 돼요."

<인터뷰> 유금선 (동래학춤 구음 무형문화재): "‘오늘 잘해야 할 텐데’ 하는 걱정밖에 없어요."

기예를 갖춘 동래 기생의 삶과 더불어 동래학춤 구음을 감상하기 위해서 많은 관람객이 공연장을 찾았습니다.

<인터뷰> 홍은주 (서울시 연희동): "굉장히 멋있을 것 같아요. 옛날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해요."

동래 학춤과 풍물소리, 청아한 금선씨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더욱 빼어난 춤사위를 뽐내는 것으로 첫 무대의 막이 열렸습니다.

국내 최고의 구음보유자답게 가요를 악기 소리로 반주해 부르는 솜씨가 일품이었는데요, 분위기에 따라, 춤사위에 따라 목소리 하나로 각종 악기를 꺼내오는 구음에 관람객들 역시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한참 꿈 많았던 15세 소녀가 갈고 닦은 소리는 그녀의 일생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듯합니다.

<인터뷰> 김운태 (채상소고춤 명인): "누구도 흉내를 못 내는 자기만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고, 몸에서 흐르는 춤사위는 단순한 것 같지만 그분만이 가진 독특함이 있어요. 유금선 씨만의 유일성, 그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결혼과 함께 유흥가를 떠났다가 사별 후에 다시 유흥가로 돌아오던 날,

<녹취> "그 옛날 자신을 흠모했던 그 남자가 손님으로 와 있었다. ‘너 왜 나왔노?’ 하는 질문이 쓰라려 눈길을 돌리는데 언뜻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보였다. 유흥가로 다시 온 제가 미워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을 불렀다. 그리고 한없이 울었다. "

지나간 그녀의 세월에 관람객들의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인터뷰> 이금자 (경기도 광주시 목현동): "(공연이) 매우 좋았어요. 유금선 씨의 소리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었고, 속에 있는 한이 분출되는 느낌도 받았고요. 내 속에 있는 것도 같이 이끌어져 나오는 것 같았어요."

<인터뷰> 유금선 (동래학춤 구음 무형문화재): "기분이 좋지요. 공중에 붕 떠서 하늘로 올라가는 기분이에요."

다시 한 번 태어난다면 대명창이 되고 싶다는 유금선 씨. 앞으로도 좋은 소리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