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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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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수 "60년 광대인생의 모든 것 보여주겠다" "언제까지 할거냐고요? 숨 끊어질 때까지 해야죠." 사물놀이 명인 김덕수가 10월 27-2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광대 인생 60주년 기념공연'을 연다. 그는 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어찌하다 보니 제 이름 앞에 '60년'이라는 단어가 붙게 됐는데 이런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연주를 하지 않았더라면 벌써 쓰러졌을 것"이라며 웃었다. 김덕수는 남사당인 아버지를 따라 어려서부터 장구를 다루며 놀았다. 다섯 살 때 남사당패 무동(舞童)으로 전통예술 무대에 데뷔했다. 7살에 전국 농악경연대회에 참가해 대통령상을 받으면서 국악천재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후 국악예술고등학교에서 우리 소리에 대해 체계적으로 공부했다. 그는 이후 활발한 공연을 펼치던 중 '데모의 앞잡이'라며 풍물..
10월 27-2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김덕수 "60년 광대인생의 모든 것 보여주겠다" "언제까지 할거냐고요? 숨 끊어질 때까지 해야죠." 사물놀이 명인 김덕수가 10월 27-2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광대 인생 60주년 기념공연'을 연다. 그는 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어찌하다 보니 제 이름 앞에 '60년'이라는 단어가 붙게 됐는데 이런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연주를 하지 않았더라면 벌써 쓰러졌을 것"이라며 웃었다. 김덕수는 남사당인 아버지를 따라 어려서부터 장구를 다루며 놀았다. 다섯 살 때 남사당패 무동(舞童)으로 전통예술 무대에 데뷔했다. 7살에 전국 농악경연대회에 참가해 대통령상을 받으면서 국악천재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후 국악예술고등학교에서 우리 소리에 대해 체계적으로 공부했다. 그는 이후 활발한 공연을 펼치던 중 '데모의 앞잡이'라며 풍물..
세계로 퍼져가는 농악과 사물놀이 최종민 교수는 1942년 강릉 태생으로 서울대 음악대학 국악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성균관 대학 동양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68년 안동교육대학 교수로 출발 강릉대, 전남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를 거쳐 남원정보국악고등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후 국립창극단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1. 농악이라고 하는 음악장르 농악은 그 명칭이 “農(농사농) 樂(풍류악)” 두 글자로 된 농악(農樂)이어서 음악의 한 갈래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 농악을 접할 수 있는 경우는 오늘날 농촌의 현장에서보다 민속예능이 행해지는 행사장인 경우가 더 많게 되었다. 2002년에도 제43회 전국민속예술축제가 충주의 탄금대 잔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