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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인 이야기

영송당(永松堂) 조순자 명인 - 전통가곡 천년의 맥 잇는 불굴의 藝人




조순자 프로필

영송당(永松堂) 조순자 명인은 서울출생으로 1959년 중앙방송국(현 KBS) 국악연구생 2기로 선발돼 국악계에 첫 발을 내딛었다.


소남 이주환, 심소 김천홍 선생 등으로부터 가무악(歌舞樂)의 실기와 이론을 수학한 후, 지난 62년부터 국립국악원 연주원으로 활동했다. 64년 국립국악원 첫 해외연주인 도일공연에서 연주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하다, 68년 인화여고 국악반 지도교사로 전직한 후 1970년 결혼과 더불어 제2의 고향인 마산에 정착하게 됐다.

이어 국악교육에도 남다른 열과 성을 지녔던 영송당은 73년 경남대를 시작으로 마산교대, 창원대, 부산교대, 경북대, 부산대, 전남대, 한국교원대 등에서 국악실기와 이론을 강의하는 한편, 교사들의 국악교육에도 앞장서 76년 경남국악교육연구회를 발족, 현재까지 교사들의 국악교육, 실기발표, 수업연구발표 등에 힘써 오고 있다.

특히 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가곡 연주와 함께 가곡의 전승·보전에 힘써 지난 2001년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로 지정, 2006년 9월 창원시 마산회원구에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전수관’을 설립했다. 이밖에, 1983년 MBC FM 개국 후 ‘FM음악회’‘우리가락한마당’‘국악으로 여는 아침’‘우리가락 시나브로’등의 고정출연자 및 진행자로도 활약 중이다.

다음은 영송당 명인과의 일문일답이다.

-일반인들은‘가고파’나‘비목’과 같은 음악을 가곡이라고 알고 있다. 영송당 선생이 말하는 가곡은.

▶기록상으로는 고려 때라고 했지만 또 다른 문헌 중국사기 중 수의 7부기 당의 9부기 등의 기록, 고분 속 발굴된 토기의 문양 등에서 보면 삼국시대 이전에도 존재했던 음악으로 보는 가장 오래된 전통음악이 가곡이다.

가곡이란 잘 다듬어진 성악곡이란 뜻이다. 조선후기 순 우리말 ‘영연’ ‘가요’ ‘노래’로도 불리운, 조선의 3대 가집(노래책) 청구영언, 해동가요, 가곡원류에 실려 있는 노래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다. 조양구락부출신 홍영후(홍난파)선생이 일본유학에서 감명 받은 슈베르트의 ‘리츠’의 작곡 형식을 가져와 우리말 시를 얹어 우리가곡이라 칭하고, 음악 교과서에 실려 교육화되면서‘선구자’나‘가고파’등이 우리가곡인 것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가요’란 명칭은 트로트에, ‘가곡’의 명칭은 서양식 가곡에서 점유하니 영언, 가요, 가곡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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