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악인 이야기

박종선 아쟁 패밀리, 현에 담은 한의 소리


 
판소리 명문가 후손 박종선 명인… 열네살부터 유랑극단서 아쟁연주
딸들이 가시밭길 뒤따라 걸을까봐 “국악 뭣하러 혀… 밥도 못먹는디”
피는 못속여 둘째딸과 장남까지 아쟁 하겠다고 나서자 고집 꺾어
피리 전공한 둘째 사위와 함께 19일 온가족 한무대 무료연주회

박종선 프로필 

“국악 해봐야 뭣 헐 것이여! 밥도 못 먹고 사는디. 좋게 시집이나 가거라.”

아쟁이라면 팔도강산에서 첫손에 꼽히는 박종선(72)은 큰딸 희연(45)에게 누누이 얘기했다.

남도땅 광주에서 태어난 박종선은 판소리 명문가의 후손이었다. 큰아버지 박동실 명창(1897∼1968)은 김소희 임소향을 길러냈고, 외할아버지는 임방울의 스승인 공창식 명창이다. 외삼촌 공기남 공기준도 명성이 자자한 소리꾼이었다. 박동실에게는 딸이 둘 있었는데, 큰딸 수길은 남도에서 이름을 날리던 명창이었고, 둘째 딸 희숙은 ‘하얀 나비’ ‘이름 모를 소녀’ 등을 부른 인기가수 김정호를 낳았다.

세 살 때 양친을 잃고 큰아버지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박종선은 가슴을 에는 아쟁소리가 미치게 좋았다. 외로운 소년에게 아쟁은 버팀목이고 애인이었다. 그 악기를 품에 안고 잠이 들었다.

박동실이 6·25전쟁 때 월북을 한 뒤 일가는 국악을 멀리하게 됐지만, 박종선은 음악을 버릴 수 없어 14세 때 큰집을 나왔다. 소년은 화랑여성창극단에 입단해 20대 중반까지 햇님, 송죽, 진경여성국극단 등을 옮겨 다니며 연주단원으로 유랑생활을 했다. 이 시기에 태평소 장구 가야금 북 등 악기를 두루 익히며 민속악을 섭렵했다.

해당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