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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민의 국악세상/국악칼럼

국악가요가 없는 한국의 노래문화



우리민족은 노래와 춤을 좋아해서 고대국가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종류의 노래문화를 다양하게 발달시켰다. 전통음악으로 따지면 각 지방에 특징 있게 발달한 민요와 그 민요를 바탕으로 발달한 무가(巫歌)들, 잡가종류, 가곡, 가사, 시조, 제사에 사용되는 악장(樂章), 시창, 송서, 판소리, 범패 등 엄청난 양의 노래문화가 발달하였다. 

이런 노래들은 우리네의 생활관습이 일을 하거나 놀거나 심지어는 혼자 있을 때에도 노래하는 것이 일상화되어있기 때문에 발달한 것들이다. 모심을 때에도 노래하면서 모심고 김맬 때에도 노래하면서 김을 맸다. 상여를 메고 나갈 때나 터를 다질 때에도 노래를 부르곤 했다. 혼자 있을 때에도 가곡을 하거나 시조를 부르고 시창이나 송서를 하는 것도 예사였다. 종교적인 의식은 그것이 굿이든 절에서 하는 재(齋)이든 심지어 유교식 제사인 종묘나 문묘 제사에도 노래가 빠지지 않았다. 우리의 노래문화는 그렇게 기능이 생활전반에 걸쳐 사용되는 것이었고 내용도 다양하고 수준 또한 높았다는 말이다.

현재 우리의 노래문화는 어떤가? 전통사회 시절에 사용되었던 많은 생활의 노래들은 사라져 버렸다.  김매기소리나 상여소리 같은 토속민요가 급속도로 사라져가고 잡가나 가곡과 시조 같은 노래도 전문가들의 전유물로 위축되었다. 무가(巫歌) 역시 굿이 사라지니까 없어지고 있다. 판소리나 잡가 종류는 국악전공자들이 하는 종류가 되어 어느 정도 그 전승의 기반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의 노래문화는 옛날과 완전히 다르게 바뀌어져 버렸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노래와 직장인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다르고 60대 노인들이 부르는 노래와 20대 청년들이 부르는 노래가 다르다. 성악가들이 부르는 노래와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 역시 다르다. 이런 오늘날의 노래문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학교에서 가르치는 노래는 서양민요를 가져다가 가사만 한국어로 번역한 것들이 많다. 이런 경우 서양말에 맞도록 작곡된 음악구조 때문에 한국어로 번역해 부르면 곡의 강약과 가사의 강약이 어긋나서 노래하기 힘들다. 말하자면 곡은 서양음악언어로 되어있는데 가사는 한국어로 불러야 하니까 서로 맞지 않아 부르기도 어렵고 완성도가 떨어지는 노래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이 음악시간에 배우는 노래들은 일상생활 가운데 잘 부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대학원 다닐 때 어느 중․고등학교에서 음악교사를 한 적이 있다. 그 때 중학교 1학년들에게 ‘노래는 즐겁다’는 단원을 가르쳤는데 쉽고 재미있는 노래여서 학생들은 어렵지 않게 잘 배웠다. 나는 학생들이 완전히 배웠다고 생각하고 그 노래로 실기시험을 보게 했는데 의외로 그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음정 박자는 정확하게 부르지만 가사가 갖는 내용과 억양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여러 학생이 그렇게 불만족스러운 시험을 보기 때문에 9번째 학생 차례가 되었을 때 유행가를 해 보라고 했다.  그 학생은 그 무렵 유행했던 ‘섬마을 선생님’이라는 유행가를 했는데 눈을 감고 온 몸을 비비 꼬면서 매우 실감나게 유행가를 하는 것이었다. 음악시간에 가르친 ‘노래는 즐겁다’는 제대로 표현이 안 되게 불렀던 학생이 그냥 듣고 배운 ‘섬마을 선생님’은 기막히게 잘 표현하며 불렀다는 말이다. 내가 가르친 교과서의 서양민요는 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유행가는 왜 그렇게 잘 표현할 수 있었을까?  서양민요는 음악언어가 우리말과 맞지 않아서 표현이 잘 안된다. 그렇다면 표현이 잘 된 유행가는 우리말과 잘 맞는 음악언어로 되어있다는 얘기인데 어째서 그렇게 되었을까?

유행가가 처음 발달하게 된 것은 일본사람들에 의해서이다. 한국에 축음기를 팔기 위해서 다양한 한국음악의 음반을 만들고 신상품으로 유행가를 내 놓았는데 일본민요 선율에 트로트리듬을 붙인 유행가는 금방 인기를 얻으며 보급되었다. 일본민요의 음악언어는 우리의 민요언어와 공통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일본어와 우리말의 어순(語順)이 같기 때문에 강약의 흐름이 서로 같고 가사를 발음할 때 시김새하는 것도 서로 같다. 그래서 일본민요선법에 트로트리듬을 붙인 우리 가요는 왜색가요나 트로트가요라 불리긴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쉽게 수용되었던 것이다.

한편 지금 젊은이들은 미국 팝송스타일의 가요를 주로 부르고 있다. 음악언어로 보면 팝송과 같은 것이어서 우리말 가사로 노래하면 가사의 액센트가 어긋나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고”를 노래한다면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고” 와 같은 식이 된다. 젊은이들은 이런 노래의 가사처리가 얼마나 우습게 되어있는지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매우 불합리한 것이다. 그리고 1970년대에 유행했던 통키타 가수들의 노래는 포크가요라고 하는데 그 포크의 뜻이 우리민요가 아니고 서양민요라는 뜻이다. 학교에서 서양민요를 배웠고 교회에서 서양민요 식의 찬송가를 부르며 음악언어를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의 대중가요는 일본민요 언어로 된 트로트가요, 미국 팝송 식으로 된 신세대의 가요, 서양민요 식으로 된 포크가요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국악가요가 거의 없는 것이 안타깝다.  국악가요라는 말이나 국악동요라는 말을 가끔 사용하긴 한다. 그러나 그런 노래들을 따져보면 음악언어는 우리민요나 판소리와 같은 우리 음악언어가 아닌데 국악악기로 반주한다거나 국악인들이 음악행위를 주도한다고 하여 그런 용어를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악가요나 국악동요가 되자면 악기에 상관없이 음악언어가 국악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 음악의 성격을 나타내는 척도는 바로 음악언어이기 때문이다.  문화산업을 발달시키기 위해서 문화언어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나 진정한 국악가요가 거의 없다고 하는 내 주장을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 

그리고 한국가곡이라고 하는 많은 노래들도 대부분 서양음악언어로 작곡했기 때문에 한국음악의 정체성을 가지지 못한다고 하지 않는가?  음악언어로 볼 때 한국 전통음악과 같은 계통이 아니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노래문화 중 우리음악언어로 작곡된 노래는 거의 없다는 얘기가 된다.  다시 말하지만 음악의 성격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음악언어인데 우리나라 작곡가들은 음악언어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고 전통음악과 같은 우리 음악언어를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국에 국악가요가 없는 음악문화를 만들어내게 되었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최종민 (철학박사, 국립극장예술진흥회 회장,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