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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민의 국악세상/국악강좌

사투리에 따라 달라지는 한국의 민요 - 최종민



1. 언어가 다르면 노래가 달라진다.

15세기 한국의 음악문화는 대단히 높은 수준으로 발달했었다.  편경 편종과 같은 악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중국음악어법의 문묘제례악이나 한국음악어법의 종묘제례악악을 작곡하였는데 그 음악이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음악학도 발달하여 그 당시의 음악이론을 집대성한 악학궤범(樂學軌範)같은 책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 악학궤범에 보면 노래에 대하여 “歌所以永言而和於律”이라고 간단히 언급한 구절이 있다.  이 말은 “노래란 말을 길게 하여 음율에 맞춘것이다”로 번역할 수 있다.  말이 노래가 된다는 것이다.  하긴 인도노래는 인도말을 길게 하여 인도음율에 맞춘것이고 중국노래는 중국말을 길게 하여 중국음율에 맞춘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렇다고 보아야 한다.  같은 논리로 우리나라 노래는 한국말을 길게 하여 우리나라의 음율에 맞춘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말이 노래가 되는 과정을 검증해 보자.  본격적인 노래가 아니면서 노래의 요소가 많은 언어현상을 찾아보자. 옛날 어머니나 할머니들은 아기를 재울때 “자장자장 자장자장 우리아가 잘도 잔다. 멍멍개야 짓지마라 우리아가 잘도잔다.”와 같이 읊조리면서 아기를 재웠다.  그런 소리에는 장단도 있고 곡조도 있으니까 노래의 요소가 많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어린학생들이 구구단을 외울때 “이이는 사 이삼은 육 이사 팔 이구 십팔”하고 외운다.  그 소리에도 장단과 곡조가 있다.  상인들이 외치는 소리에도 곡조가 있고 농부들이 소를 몰면서 하는 소리에도 곡조가 있다.  이런 소리들이 노래의 바탕이 된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우리노래의 모습은 어떨까?.  간단한 것으로는 ‘새야새야’와 같이 3음으로 되는 것이 있다.  완전4도 위에 장2도를 쌓아 올려 만들어지는 이 3음계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새야새야’의 곡조가 된다.  그런데 그 곡조도 처음을 하행으로 시작하여 “솔레라솔- 라솔레레- 라레라라- 라솔레레-”와 같이 하는 경우도 있고 처음을 상행으로 시작하여 “라레라라- 라솔레레- 솔레라솔- 라솔레레-”와 같이 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 두가지 곡조가 다 쓰인다. 또 가사를 “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로 해도 마찬가지이다.  말을 읊조리듯이 하여 만들어지는 간단한 민요는 3음만으로도 노래가 된다.

그런데 이 ‘새야새야’는 박자가 5박자이다. 서양음악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5박자가 우리노래에서는 가장 간단한 민요에도 사용되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의 노래에는 5박자가 많이 쓰인다.  농촌에서 모를 심을때 부르는 모심기 노래에도 “심어주게- \ 심어주게- \ 심-어주- \ 게---- \ 오-종조옹 \ 줄-모르을 \ 심-어주- \ 게---- ”와 같이 5박자로 부른다.  우리말이 석자나 넉자로 이루어지는 말이 많기 때문에 그 석자나 넉자를 우리가 말하는 식으로 읊조리면 5박자가 될 때에 편하고 자연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5박자를 늘이면 8박자가 된다.  서양음악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5박자와 8박자가 우리음악에서는 아주 많이 사용하는 박자가 되어 있다.  ‘시조’의 초장은 박자가 5․8․8․5․8 이니까 5박과 8박이 섞여 있는 박자인데 경기민요인 ‘노랫가락’도 그런식으로 되어 있다. ‘노랫가락’은 ‘시조’와 같은 3장형식의 시를 가사로 하는 노래인데 “청-산리- \ 벽게-수-야-- \ 수이---감을- \ 자랑-마- \ 라---- ” 와 같이 5박과 8박을 섞어서 박자로 쓰고 있다.  현행의 시조나 가곡이 다 5박구조와 8박구조로 되어있고 풍류로 연주하는 영산회상의 상영산이나 중영산 세령산이 다 5박구조이다.  많은 궁중음악이나 고려때 가요로 알려진 ‘가시리’ ‘사모곡’ ‘서경별곡’ 청산별곡‘ 같은 노래도 다 5박구조와 8박구조로 되어 있다.  서양음악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5박자와 8박자가 우리음악에서는 아주 흔하게 쓰이고 있다.  우리말이 그런 박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말에는 사투리가 있다.  음악이라는 두 글자도 전라도에서는 “으마악-”과 같이 발음하고 경상도에서는 “어막”과 같이 발음한다.  전라도의 사투리는 소리를 뒤로 밀면서 발음하기 때문에 소리의 세(勢)가 뒤쪽으로 계속 진행할려는 경향을 갖는데 반하여 경상도 사투리는 뒤가 끊어지면서 앞쪽에 액쎈트가 가게 된다.  그러면 두 지방의 민요도 그와 같이 발달하게 된다.  전라도 민요는 선율이 계속 진행할려는 경향을 갖기 때문에 ‘진도아리랑’의 첫부분이 “무운경- 새재애느은 웬 고오오갠가 - ” 하면서 뒤를 떨면서 지속하고 있다.  한편 경상도 민요는 “어막”이라는 말과 같이 앞에 액쎈트를 주면서 뒤는 곧 끊어지게 소리내기 때문에 ‘밀양아리랑’의 경우 “날쫌보소오 날쫌보소오”와 같이 부르게 된다.  사투리의 억양이 그대로 민요에 반영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사투리에 따라서 민요의 구조나 특징이 달라지기 때문에 전라도민요 경상도민요 경기민요등의 갈래가 형성되게 되고 민요권이라는 것이 성립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땅덩이는 그리 크기 않지만 각 지방마다 독특한 사투리가 있어서 그와 같은 맥락의 특징있는 민요가 많이 발달 하였다.  내가 채집해 본 바로  우리나라의 민요는 제주도 한 도에서 300곡 이상이 나올 정도로 많은 민요가 발달하였다. 나는 그 중 170곡 정도를 골라 악보를 낸 적이 있다.

악학궤범의 언급대로 노래란 말을 바탕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다.  말이 다르면 노래가 달라진다.  인도에는 인도식 노래가 중국에는 중국식 노래가 발달하는 것도 다 말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안에서도 사투리가 다르면 다른 특징의 노래가 발달하지 않았던가?.  앞으로도 우리말을 절묘하게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노래문화를 창출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2. 민요의 발성법은 사투리의 발성법과 통한다.

획일적인 교육을 받은 지금의 세대들은 발성법하면 벨칸토발성법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민요를 할 때에도 벨칸토 발성법으로 부르는 것이 음악미를 한 층 높이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잘 못된 생각이다.  발성법이란 음악에 따라서 그 음악의 내용과 음악의 아름다움을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발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음악이 다르면 발성법도 다른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바로 판소리명창의 소리와 경기명창의 소리가 다르고 팝송가수들의 소리와 오페라가수들의 소리가 다르지 않은가?. 발성법은 노래에 따라 다양하게 발달하는 것이지 한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외래문화를 받아드리는 과정에서 획일적인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열린 생각을 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다양한 내용으로 열린 교육을 받아야 선택도 할 수 있고 창조적인 생각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데 획일적인 교육이 사고를 경직시켜 닫힌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려서 배운 한 가지 지식만 믿고 일생을 살아가는 사람도 많고 자기변신을 제대로 못하여 시대에 뒤 떨어지고 현실을 제대로 못 보는 사람도 많이 생겨 나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창조적이어야 하는 음악계에 의외로 닫힌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발성법에 관한 문제도 그런것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다.

나는 1970년대에 KBS방송국의 민요백일장 심사를 한 동안 했었다.  그때만해도 평안도 황해도의 민요를 제대로 부르는 그 쪽 출신의 출연자가 꽤 있었다. 그런데 근래에는 그쪽민요를 서도명창에게 직접 배우는 사람들 중에도 서도민요의 맛을 제대로 내며 부르는 사람이 드물다. 왜 그럴까?.

민요란 자연발생적으로 발달하는 노래이다.  평안도나 황해도의 민요 즉 서도민요는 서도지역의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이 그들의 생활속에서 발달시킨 노래이고 전라도의 민요 즉 남도민요는 전라도의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이 그들의 생활속에서 발달시킨 노래이다.  때문에 서도민요는 서도의 사투리를 배운사람이어야 제대로 부를 수 있고 남도민요는 전라도의 사투리를 어려서 익힌 사람이 불러야 제맛이난다.  1970년대만 해도 평안도나 황해도의 사투리를 쓰면서 자란 서도출신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쪽민요를 서울에서도 제대로 들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세대가 거의 사라지고 서울말을 쓰면서 자란 세대가 서도민요를 배우니까 서도민요의 맛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것이다.

평안도 사투리는 음악을 “우마악”하고 발음 할 정도로 소리를 깊고 굵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말을 그렇게 하면서 자라면 발성기관도 그렇게 발달하고 그런 말을 노래로 발달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서도민요도 그런식으로 발성하게 된다.  ‘수심가’나 ‘긴아리’ ‘산염불’등이 다 그런 발성으로 노래하는 서도민요이다. 목을 굵고 깊게 안에서 응응거리고 떨면서 한음 한음을 구구절절이 수식하면서 서도인의 정한을 풀어내는 그런 발성을 하는 것이다. 민요가사의 발음도 그렇게 해야 제대로 딕션이 되고 서도민요 특유의 아름다움도 그렇게 해야 표출되는 것이다. 때문에 평안도나 황해도의 사투리를 제대로 못하면 서도민요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 사투리로 자란 세대가 서도민요를 배워도 제맛을 내기 어려운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전라도민요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전라도민요는 전라도의 사투리를 바탕으로 발달한 것이기 때문에 전라도 사투리를 배운 전라도 출신이 잘 할 수 있다. 판소리도 전라도를 배경으로 발달한 성악이기 때문에 전라도 사투리와 통하는 발성으로 노래한다.  과거 명창들의 출신 지역을 보더라도 전라도가 압도적으로 많고 판소리의 아니리를 들어봐도 전라도 사투리식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다른 지역 출신이 판소리를 전공할 경우 일상적인 말도 전라도 사투리로 말할려고 노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박귀희씨도 경상도출신으로 판소리를 했는데 늘 전라도 사투리식으로 말할려고 애쓰곤 했었다.  그렇게 애를 써도 경상도출신들은 경상도사투리의 억양을 잘 고치지 못하기 때문에 판소리의 아니를 할 때에는 꼭 표가 나게 마련이었다.  과거 박녹주명창의 경우도 그가 선산출신이기 때문에 “놀보란 뉨이 헝보를 쫒아내넌디”와 같이 판소리의 아니리를 온통 경상도식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었다.

민요의 발성법은 사투리의 발성법과 통하는 것이다.  때문에 민요의 특징과 사투리의 특징이 상충될 때 민요의 맛을 내기 어렵다. 맛을 내기 어려우면 음악적 표현의 완성도가 크게 떨어지는 것이다.  완성도가 결여된 음악은 재롱이나 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가사가 있는 음악인 경우 우선은 그 가사의 표현이 완벽하게 되고 그 음악이 갖는 또 다른 음악성을 표출할 수 있어야 한다.  6.25때 김일성은 일제시대 대중들에게 많은 위안을 주었던 판소리명창들을 북한으로 여러명 데려 갔다.  대우를 잘해 주고 북한 출신들에게 전라도 음악의 특징이 강한 판소리를 가르치도록 했던 것이다.  그런데 몇 년 실시해 본 후 그 판소리를 북한에서 하지 않게 되는데 내 생각에는 평안도 사투리를 쓰는 학생들이 판소리의 맛을 낼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 어린이들은 우리민요를 많이 배우게 되어있다.  또 민요를 성악의 한 갈래로 가꾸어 가는 노력도 할 것이다.  그럴 때 민요의 발성법문제가 대두 될 것인데 아무 지식 없이 자기가 아는 방법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되겠기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민요는 사투리를 바탕으로 발달한 음악이어서 사투리의 발성과 민요의 발성은 같은 맥락이라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3. 남도 음악의 뿌리 육자백이 토리

앞에서 “음이 움직인다”고 하니까 꽤 많은 독자들이 음이 어떻게 움직일까 하고 의아해 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 같고 또 모든 음이 움직이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 같다.  물론 움직이는 음이 있다. 그러나 모든 음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요즘 음악지식이 너무 서양음악 지식 중심으로 되어 있고 그런 사고로 한국음악까지 해석하고 작곡하기 때문에 움직이는 음의 특성을 강조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음이 움직인다”고 글을 써 본 것이다.

우리음악에는 음계를 구성하고 있는 음 가운데 움직이는 음도 있고 움직이지 않는 음도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전체의 음이 움직이는 것 처럼 느끼게 되는 것은 실제로 움직이는 음도 있고 또 음과 음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시김새라고 하는 특별한 투의 잔가락을 많이 쓰기 때문에 또한 움직이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시김새에 대해서도 언젠가 따로 얘기꺼리를 만들겠지만 오늘은 움직이는 음과 움직이지 않는 음이 만들어 내는 육자백이 토리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한다.  육자백이토리는 육자백이라는 노래의 음악적특성인데 그것을 한 지역 음악의 대표적인 특성으로 보고 전라도 지역의 음악적 특성을 설명할 때 사용한다.  말을 바꾸면 전라도 음악의 음악적 특성을 육자백이 토리라는 말로 표현하고 설명한다는 것이다.

육자백이는 전라도를 대표하는 민요이고 많은 전라도 민요가 육자백이와 같은 음악적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육자백이는 처음을 “산이로-구나-헤--”라는 짧은 후렴으로 시작한다.  “산이로-구나-헤--”의 선율은 “라- 도시도시라- 미-- 라도시라라--”로 되어 있는데 “라”는 움직이지 않는 음이고 “도시”는 꺽는 음이고 “미”는 떠는 음이어서 움직이는 음이다.  진도아리랑의 후렴과 똑 같은 음계구조이다.  아래의 떠는 음 “미” 중간의 떨지 않는 “라” 그리고 위의 꺽어내는 “도시”가 기본 골격이 되는 음체계인 것이다. 물론 그 위의 다른 음들도  필요에 따라 등장하지만(도레미솔라) 제일 기본 되는 선율적 특징은 바로 <떠는음> <평으로 내는 음> <꺽는 음>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육자백이 토리를 음정으로 따져서 음계를 설명하면 “미 라 도시”와 같은 구조로 설명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런 음체계만 갖추면 육자백이 토리라고 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육자백이토리가 되자면 그런 음계적인 조건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외에 육자백이 냄새가 물씬나는 창법의 요소까지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라도 특유의 애절한 창법으로 떨고 꺽고 해야 육자백이 맛이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떨고 꺽고 하는 음들을 “떠는 목” “꺽는 목” “평으로 내는 목”으로 부르기도 한다.  음계 중심으로 볼 때에는 “떠는 음”하던 용어를 창법 중심으로 볼 때에는 “떠는 목”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그러니까 육자백이 토리는 떠는 음을 떠는 목으로 부르고 꺽는 음을 꺽는 목으로 부를 때 비로소 육자백이 토리의 조건을 다 갖추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육자백이토리는 우리나라의 민속음악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음악적특징이다.  시나위라고 하는 기악합주의 선율적 특징도 육자백이 토리로 되어있고 산조나 판소리의 음악적 뿌리도 육자백이 토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나위는 육자백이가락을 악기로 연주하면 시나위가락이 된다고 해도 될 정도로 선율적특징이 똑 같다.  다만 시나위로 할 때에는 그 가락을 필요한 장단에 얹어 연주해 나간다는 것만 다를 뿐이다.  그래서 시나위의 음악적 특징은 육자백이 토리로 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시나위의 범위가 한강 이남의 경기 충청지역에서 전라도 전체와 경상도 남해안 충무에 이르는 지방까지 넓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이 지역을 시나위 음악권이라 하기도 한다.  이 지역의 민요는 육자백이 토리가 아닐 수 있지만 음악을 전문으로 했던 무속들의 기악은 시나위라는 육자백이 토리로 되어 있는 것을 쓰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다.  한강이남의 경기 도당굿에서 쓰는 시나위가 그 대표적인 예이고 충무의 굿에서도 시나위 가락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하는 얘기이다.  그 만큼 육자백이 토리의 음악적 힘이 강하다는 얘기도 되고 또 전문음악인들 사이에 선호하던 음악이라는 증거도 된다.

그러나 판소리나 산조는 육자백이 토리로 되어있다고 하면 틀린 말이 된다. 판소리는 육자백이 토리의 민요권에서 발달하긴 했지만 육자백이 토리를 발달시켜 훨씬 다른 음악어법을 구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판소리 명창들은 육자백이 토리를 잘 구사하는 사람들이지만 육자백이 토리를 벗어난 가곡의 토리나 경기민요의 토리나 권마성의 토리등을 받아드려 훨씬 다양하고 발달된 음악언어를 가꾸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자기네의 뿌리이기도 한 육자백이 토리를 경원시 하고 판소리에 육자백이 목(성음)을 많이 쓰면 수준이 낮은 명창으로 무시하는 풍조까지 있었다.  그래서 판소리인들은 육자백이 목을 많이 쓰는 굿판의 소리를 판소리에서 사용하면 아주 못 마땅해 하고 멸시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 만큼 판소리는 육자백이 토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육자백이 토리를 벗어난 더 발달된 음악언어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판소리인들에 의하여 발달을 거듭해 온 음악이다.

우리나라 민속음악의 대종을 이루는 판소리나 산조는 육자백이 보다 더 발달한 음악언어로 되어 있지만 육자백이 토리가 바탕이 되어있는 것 만은 확실하다. 때문에 판소리나 산조를 제대로 이해하고 배우기 위해서는 육자백이 토리를 먼저 이해하고 배워야 한다.  앞으로 국악교육이 활성화되면 많은 학교에서 판소리나 산조를 가르치게 될 것이다.  그럴 경우 육자백이나 시나위를 먼저 이해시키고 가르친 다음 판소리나 산조를 가르치면 훨씬 더 능율적으로 지도 할 수 있을 것이고 또 남도음악의 입체적인 이해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 만큼 육자백이 토리는 남도음악의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4. ‘한 오백년’은 메나리 토리라고 하는데 - - .

국악에 대하여 무엇을 좀 알아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부디치는 어려움은 국악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어렵고 그 개념이 분명하지 않을 때가 많다는 점이다.  영어로 된 모-드(Mode)나 스케일(Scale)이라는 용어도 쓰고 한문으로 된 선법(旋法)이나 조(調)라는 용어도 쓰고 또 지금 이야기 하려는 <토리>같은 순 한국말도 사용하고 있는데 이들이 엄격한 구별없이 혼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토리라는 말은 음악의 사투리 쯤으로 이해하면 좋으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사투리는 발음뿐만 아니라 억양까지 갖추어져야 사투리의 특징이 살아나지 않는가?. 음악에서의 토리도 선법이나 음계뿐만 아니라 창법이나 연주법까지 갖추어 져야 그 특징이 살아난다. 가령 “시나위가 육자백이 토리로 되어있다”고 말했을 때 그 육자백이 토리란 선법이나 음계도 육자백이 음계로 되어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창법이나 연주법도 그렇게 되어있다는 것을 뜻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메나리 토리>라고 하면 ‘토리’의 개념은 어느정도 파악했다 하더라도 ‘메나리’라는 말이 또 생소하다.  이 메나리라는 용어는 강원도나 경상도 지역에서 김맬 때 부르는 노동요를 ‘메나리’ ‘미너리’등으로 부르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으로 강원도나 경상도의 특징적인 민요가락을 그렇게 부른다.  그러니까 ‘메나리’는 강원도나 경상도의 김매기 노래를 가리키는 말도 되고 그런 가락으로 된 노래를 뜻하는 용어도 된다고 할 수 있다. 실제 국악에서는 경상도 강원도의 민요를 설명할 때 반드시 사용하는 중요한 용어이다.  판소리 심청가에서는 황성 맹인잔치에 참여하기 위하여 심봉사와 뺑득어미가 도화동을 떠날 때 뺑득어미가 길소리를 메기는데 판소리조가 아닌 “저 경상도 밭매기 소리로 멕이것다”하면서 “어리가리너 -- 어리가리  봉사가장 다리고 황성천리를 어이를 갈거나”하고 청승맞게 메기는데 그것이 메나리 조이다.

조용필이 가수로서 재기할 때 디딤돌이 되었던 노래가 ‘한 오백년’이었는데 그 노래가 전파를 타고 울려 퍼졌을때 정말 엄청난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톱소리 비슷한 음색으로 전주가 나오면 바로 고음으로 “한 많은 이세상 야속한 님아 \ 정을 두고 몸만가니 눈물이 난다”하고 불렀는데 피를 토하듯 호소하며 부르는 조용필의 그 노래가 그렇게 듣는 이들의 심금을 크게 울려 주었다. 그 ‘한 오백년’이 바로 강원도의 민요이고 그것이 메나리 토리로 되어있는 노래이다.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구 - ”의 가락을 계명으로 해 보라.  미미미\라라라도\미미레도레미\레도라솔미\와 같이 되는데 이런 선율구조가 메나리 가락의 구조라는 말이다.  ‘미라솔미’와 같은 선율이 많고 하행할 때에는 ‘레도레도라솔미’와 같이 순차하행하는 선율이 많다.  ‘한 오백년’을 계명으로 해도 메나리 음계를 쉽게 알 수 있고 ‘정선 아리랑’이나 ‘상주 모심기노래’를 계명으로 해도 메나리 음계를 쉽게 알 수 있다.

   ‘상주 모심기노래’를 예로 들어 보자.  상-주(미라솔미) 함-창(미라솔미) 공갈못-에(라라도레도라 라도) 연밥-따는(도라도라솔미라라) 저 처자야(솔솔 미레미). 연밥-(미레도레도) 줄-밥(도레도라솔미)  다 따- 주마-(라 라도레도라 라도) 우리(도라도라솔) 부모(미라라) 섬겨다오(솔솔라솔미레미). 대개 이와 같이 계명을 붙여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선율이 상행할 때에는 ‘미라도레미’로 올라가고 하행할때에는 ‘미레도라솔미’와 같이 순차진행하는 것이 보통인데 특히 ‘레도레도-’와 같은 부분과 ‘라솔미’나 ‘미라솔미’와 같은 부분에서 메나리 특유의 창법적 특징이 잘 나타나게 되어있다.

이생강 명인은 즉흥연주를 잘 하고 메나리 토리를 즐겨 연주하는 음악가이다. 그의 작품 가운데 소금으로 연주하는 ‘강원풍류’라는 작품이 있다.  그 작품은 누가 들어도 강원도 민요의 내음이 물씬 풍긴다.  왜냐하면 ‘한 오백년’의 가락이 뼈대를 이루면서 여러 가지로 변주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생강은 남도 풍으로 된 시나위나 산조도 잘 연주하지만 메나리토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잘 연주한다.  그래서 남들은 산조에 메나리가락을 사용하지 않지만 이생강은 그의 대금산조에도 메나리가락을 넣어 연주할 때가 있을 정도로 메나리 가락을 좋아한다.  이생강이 연주하는 메나리 가락에는 흥도 있고 힘도 있고 구성진 애원도 있다.  정말 메나리 가락을 잘 연주하는데 특히 소금으로 연주하는 메나리 가락이 아름답다.  그래서 메나리 가락으로 연주하는 ‘강원풍류’는 언제나 소금으로 연주한다.  이생강이 경상도 사람이고 소금이 신라의 악기여서 이생강 소금 메나리 가락이 잘 어울리며 힘을 발휘하는지도 모르겠다.

서양음악의 음체계로 길들여진 한국의 음악가들이 한국음악의 음체계를 익히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한국의 다양한 음체계가 새로운 작품에 많이 응용될 전망이고 또 본격적으로 한국의 독특한 가락을 터득하고 싶어하는 음악인들이 많이 나타나리라고 본다. 그런 경우 처음으로 훈련하기에 좋은 것이 바로 메나리 토리이다.  메나리 토리는 음정이 분명하면서 선율은 장조나 단조와 다르고 장단도 어렵지 않다.  계명으로 부르기도 쉽다. 피아노로 훈련 시켜도 될 정도인데 다만 독특한 창법에 해당하는 몇 가지만 잘 터득하면 쉽게 훈련할 수 있다.  메나리 토리의 훈련은 ‘한 오백년’ ‘정선 아리랑’ ‘상주 모심기노래’ ‘쾌지나칭칭’ ‘신고산타령’ ‘강원도 아리랑’등의 민요를 가지고 계명창으로 불러보게 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충분히 시김새 까지 할 수 있게 되면 저절로 그런 가락을 구사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음악은 하나의 문화 언어이다. 기존의 민요를 통하여 메나리 토리를 구사할 수 있는 음악언어능력을 갖게 하는 것이 민요교육목표의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우리도 이생강씨 처럼 메나리 가락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해 보자는 것이다. 

 5. 피아노로도 가르칠 수 있는 경기민요

학교에서 한국민요를 지도할 때 어떤 악기를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까?.  교사가 여러가지 악기를 잘 다룰 수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는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지금까지는 학교에서 한국민요를 많이 가르쳐야 된다고 하기만 했지 구체적으로 가르치는 방법이나 악기사용에 대해서는 별로 논의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장구를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자주 하지만 장구는 장단 악기이지 멜로디 악기가 아니지 않은가?.  장구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의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장구이외에 선율악기를 사용하는 방법도 모색해야 되겠다는 생각에서 이 글을 쓴다.

지금까지 국악계에서는 피아노나 오르간을 한국민요지도에 사용하는 문제를 두고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 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장구만 강조해 온 느낌이 있다.  그러나 민요도 선율이 중요하기 때문에 선율악기의 사용은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가야금이나 대금 같은 국악악기를 잘 다룰 수 있다면 민요의 선율을 반주해 주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 교사들은 부득이 자기가 다룰 수 있는 다른 악기로 그 역할을 대신 할 수 있도록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악기는 음악을 하는 도구이고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어떤 악기든지 한국민요를 지도하는데 효과적이면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교사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피아노나  오르간을 한국민요 지도에 사용하는 방법을 검토해 보아야 한다.  먼저 피아노를 한국민요 지도에 사용하는 것이 어떨지 그 적합성을 따져 보아야 하는데 “피아노는 평균율 악기이고 한국민요는 평균율이 아니기 때문에 사용하면 안 된다”하고 부정적으로 논리를 전개하면 그 가능성은 줄어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사람의 음정감각은 평균율과 꼭 일치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자연적인 것이고 교육용 악기란 보조도구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평균율에 대한 문제는 좀 뒤로 미루어 두고 얘기를 전개해도 좋을 것이라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

한국민요 중에서도 육자백이 토리는 피아노를 사용하는 것이 당장은 어렵다. 왜냐하면 떠는 음이나 꺽는음 등의 움직이는 음을 피아노가 그대로 흉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심가 토리의 서도민요도 마찬가지이다.  서도민요 특유의 응응거리고 떠는 음은 피아노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다.  그래서 우선 육자백이 토리의 민요와 수심가 토리의 민요는 피아노로 반주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으로 잠정적인 결론을 내려도 좋다.  그러나 더 연구하고 지도법을 개발하면 그런 선율도 피아노를 사용하여 가르치는 방법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포기할 필요가 없다.  그러고 보면 육자백이 토리와 수심가 토리를 제외한 메나리 토리의 민요나 대부분의 경기민요와 신민요는 피아노를 사용해도 좋은 민요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선율을 이루는 각 음들이 분명한 음 높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리랑’, ‘도라지타령’, ‘닐니리야’, ‘태평가’, ‘청춘가’, ‘군밤타령’등은 발생연대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신민요에 속하는 노래들로서 음정이 거의 정확하기 때문에 피아노로 반주하면서 가르쳐도 문제가 없다.  ‘경복궁타령’, ‘방아타령’, ‘양산도’, ‘오돌독’ ‘오봉산타령’ ‘한강수타령’ ‘노래가락’ ‘창부타령’등의 전형적인 경기민요도 음정은 분명하기 때문에 피아노로 반주하면서 지도하면 크게 효과를 볼 수 있다. 나는 바로 어제 컬트피아니시트 임동창씨를 만났는데 ‘노래가락’을 아주 멋지게 해 보여 주면서 내가 채보한 악보를 보고 연습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좀 더 자세히 물어 보았더니 내가 채보한 악보를 보고 실제 명창의 음반을 듣고 연습하니까 그렇게 되더라는 것이다.  임동창씨의 부인까지도 멋진 ‘노래가락’을 할 수 있게 되었기에 정말 이렇게 쉽게 배우고 가르칠 수 있는 것을 왜 그렇게 어렵게만 생각하고 제대로 안 가르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다. 많은 경기민요나 신민요등은 잘 채보된 악보만 있으면 피아노를 치면서 임동창씨 처럼 혼자 연습해도 되는 것이다.  실제 음반을 들어서 그 음악의 이미지는 터득해야 하겠지만 기본가락만은 피아노로도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교사들이 민요를 지도할 때에 피아노를 사용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 아닌가?.  특히 기본 선율을 피아노로 치면서 지도하는 것은 웬만한 국악기로 연주해 주는 것 보다 더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기본 선율을 가사와 함께 익힌 다음 명창의 노래를 들어보면서 계속 연습하면 경기민요 다운 민요를 가창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피아노를 경기민요 교육에 활용하는 방법이 확산되면 자연 민요 가르치기를 겁내는 교사도 줄어들 것이고 또 피아노의 민요 반주법도 발달하게 되리라고 본다.

과거에 어느 서양의 음악가가 한국민요를 피아노로 쳐보고는 한국민요와 피아노소리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기는 하다.  그 음악가는 음악적으로 엄격한 심미안을 가지고 그렇게 판단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틀린 것이 아니라고 본다.  우리도 그렇게 느끼는 것이 정상적이다.  그러나 교육에는 방법이 매우 중요한 것인데 피아노를 우리민요 교육에 활용해 보자는 제안을 하는 것이고 그 가능성은 매우 높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다만 연구를 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우선 피아노로 표현했을 때 효과적일 악보의 마련이 급선무이고 그 선율을 피아노라는 메카니즘에 어울리게 반주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우리민요는 대부분 선율이 화성적으로 진행하지 않는다.  때문에 흔히 학교에서 사용하는 기본 3화음 중심으로 반주해서는 안 된다.  우리민요 선율에 적당한 코-드를 개발하고 장단을 겸한 리드미칼한 반주형을 다양하게 개발해야 한다. 이런 코-드의 창출은 이론적으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험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실험을 해 가면서 하나 하나 개척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으로 본다.  많은 분들이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좋은 방법을 모색하고 축적해 나갔으면 한다.

   6. <Free 장단>의 서도민요

요즘 고수(鼓手)라고 하면 대개 판소리판의 고수나 산조 같은 기악의 장단치는 사람을 뜻하게 된다.  그런 고수들이 반주하는 음악은 남도악에 바탕을 둔 것들이기 때문에 장단의 명칭도 진양조나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같은 장단이름이 많고 굿거리나 세마치같은 장단 이름도 많이 쓰인다.  그런데 이런 장단을 잘 치는 사람 즉 고수일지라도 ‘수심가’나 ‘엮음수심가’ 같은 서도소리를 만나게 되면 전혀 장단을 칠 수가 없다는 것이 거의 공통된 의견이다.  왜냐하면 ‘수심가’같은 노래는 남도악의 그런 장단들과는 맞지 않기 때문이고 또 부를 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부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무슨 ‘수심가장단’이란 명칭의 장단이름도 사용하기 어렵게 되어있다.  그냥 노래에 따라서 적당하게 쳐 준다고 해야할 그런 장단이다.

나는 또 이런 경험을 한 일이 있다. 어떤 타악을 전공하는 음악가가(그는 이미 큰 악단의 수석타악연주자였다) 함께 어울려 노는 망년회 자리에서 자기는 이제 장단에는 자신이 있다고 객기(客氣)를 부린적이 있다.  그래서 내가 나의 노래에 장단을 쳐 보라고 하면서 경기 산타령 중에서 앞산타령을 불렀는데 그는 몇장단 안 가서 손을 들고 말았다. 말하자면 판소리나 산조의 장단을 잘 치는 상당한 고수도 경기 산타령의 장단은 잘 못 친다는 것이다.  그것을 잘 칠려면 또 따로 배워야 한다.  때문에 우리나라 장단의 공부란 정말 한도 없고 끝도 없다고 해야 할 만큼 우리음악은 장단이 다양하고 엄청나게 복잡하게 발달돼 있다. 장단 몇 가지를 배워 가지고 한국음악의 장단에 대하여 함부로 얘기하는 것은 획일적인 사고에 젖어 있는 초보자들의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당장 지금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태평무(보유자 강선영)만 하드라도 그 춤의 장단을 옛날식으로 칠 수 있는 타악인이 없다.  물론 김덕수 같은 예능인이 그 장단을 배워서 치고 있지만 내가 과거에 보았던 이동안이나 지갑성 정일동씨등이 치는 장단과는 그 느낌이 다르다.

우리나라 음악의 장단은 정말 다양하고 복잡하다.  또 음악과 장단간의 관계도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창배선생께서 내가 말해준 “노래의 장단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갈수록 덜 맞아 떨어진다”고 하신 말씀이 늘 마음에 새겨 진다.  말을 바꾸면 전라도 민요는 대개 장단에 잘 맞는다.  판소리나 산조같은 고급음악도 장단에 잘 맞는다.  무슨 경연대회나 공연에서도 남도악의 경우 “장단에 삐었다”고 하면 그것은 가장 큰 흠으로 여겨지게 되어있다.  그만큼 장단이 중요하기도 하고 또 장단과 음악이 꼭 맞게 되어있다. 그러나 중부지방으로 올라오면 벌써 장단에 덜 맞는 노래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별가’나 ‘긴아리랑’만 해도 장단에 꼭 꼭 맞아 떨어지는 노래라 보기 어렵다. ‘정선아리랑’처럼 장단이 늘어났다 줄어들었다하여 노래부르는 사람의 노래에 맞게 장단을 처리해 주어야 하는 것도 있다.  ‘회심곡’도 일정한 장단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심곡’은 노래 부르는 사람이 꽹가리를 직접 치면서 하지 않는가?.

이창배선생님이 “장단은 북쪽으로 갈수록 정확하지 않다”고 표현한 그 말에는 ‘수심가’를 염두에 둔 느낌이 짙다. 왜냐하면 평안도 민요인 ‘수심가’는 장단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롭게 음악을 만들어 가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엮음수심가’도 마찬가지이다.  노래의 흐름에 따라 적당하게 장단을 쳐 주어야지 요즘의 리듬박스처럼 일정하게 같은 속도 같은 패턴의 장단을 쳐 주어서는 절대 안되는 음악이다.  ‘긴아리’ 같은 서도민요도 마찬가지이다. 선율이 화려하지도 않고 도약선율이나 박진감 있는 리듬도 없다.  한 마디 한 마디를 입안에서 음미해 가며 응응거리고 떨고 굴리면 표현하는 그런 노래에 장단이 구속일 수가 없을 것이다. 정말 노래하는 사람 자체가 작곡가요 연주가요 감상가인 셈이다.  부정적으로 보면 자기도취에 빠져 음악의 중요한 요소를 무시한채 자기만족식의 노래를 하는 것 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그 지방의 민요는 그렇게 발달해 왔고 그렇게 부르는 것이 그네들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그대로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남도음악의 기준으로 서도음악을 평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북쪽의 민요는 장단에 덜 맞는다고 하신 이창배선생님의 얘기를 되새기게 되는 것이다.

북쪽의 민요중에서도 평안도 황해도의 민요를 서도민요라고 하는데 서도민요에는 ‘수심가’ ‘엮음수심가’ ‘긴아리’ 자즌아리‘‘긴염불’ ‘자즌염불’ ‘긴난봉가’ ‘자즌난봉가’ ‘사설난봉가’ ‘병신난봉가’ ‘영변가’ ‘공명가’등이 음반으로 많이 남아 있다.서도민요에도 토속민요가 있고 창민요가 있고 민요보다 한 단계 높은 잡가류에 해당하는 ‘서도산타령이나’ ‘추풍감별곡’ ‘관산융마’ 같은 독특한 노래들이 있다.  모두다 특징이 뚜렷하고 독특한 맛을 느끼게 하는 멋진 노래들이다. 그런데 20년 전만해도 정말 서도맛이 나는 이런 노래들을 얼마든지 들을 수 있었다.  그 지방출신들이 피난와서 서울이나 인천등지에 많이 살았고 그네들 중에는 민요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방송국의 민요백일장이나 고향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그 지방출신 만신들의 굿판같은데에서 자주 불렀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서도소리를 들어 보기 어렵게 되었다.  서도지방에서 자라서 그 쪽 사투리를 쓰면서 그쪽 노래를 부르던 세대가 거의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이 오복녀 같은 인간문화재가 건강하게 장수하셔서 많은 제자를 가르치고 있긴하지만 서울말을 쓰면서 서도 특유의 목을 쓴다는 것이 어딘가 부족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더욱 옛날의 서도소리가 그립게 되는 것이다.  또 차츰 장단도 일정하게 굳어져 가고 있어서 옛날 명창들이 자유자재로 부르던 그런 서도창을 들어 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이북에서의 서도창은 거의 사라졌을 것으로 보기 때문에 더욱 서도창의 올바른 전승이 중요한 과제라 생각하고 무엇보다 free장단으로 연주하는 서도창이 많이 많이 복원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7. 민요의 지도가 바뀌어 가고 있다.

우리 나라는 산수가 아름답고 맑은데다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에 위치하고 있어서 사람이 살기 참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전국 어느 곳에나 마을이 형성되어 일찍부터 인문이 발달하고 다양한 생활양식이 자연의 변화와 조화를 이루며 발달하여 왔다.  문자 그대로 금수강산이다.  어디를 파도 그냥 마실 수 있는 맑은 샘물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너무 추운 곳도 없고 너무 더운 곳도 없다. 산촌도 있고 어촌도 있고 농촌도 있고 도시도 있다.  정말 살기 좋은 조건을 두루 갖춘 삼천리 강토다.  그래서인지 우리네는 자연을 사랑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자연스레 문화를 가꾸며 이 땅에서 살아왔다.  인간이 만든 무슨 규범중심으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물이 흘러가는 것과 같은 자연의 이치와 같다고 생각하며 현실을 중시하고 자연을 벗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우리문화는 지역의 자연환경에 따라 특색 있고 다양한 내용으로 발달했다고 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다 담가 먹는 김치이지만 지역이나 자연조건에 따라 김치의 맛이나 만드는 방법이 다르게 발달하였다. 젓갈을 넣어 담는 김치에도 멸치젓을 넣는 것 굴젓을 넣는 것 갈치젓을 넣는 것 새우젓을 넣는 것 가자미젓을 넣는 것 등이 있고 흰 김치 물김치 동치미 고추김치 등 그 종류만 해도 정말 다양하게 발달하였다.  술도 마찬가지도 우리네 술은 가양주(家釀酒)라 하여 집집마다 다른 술을 빚어 반주로 사용하는 술 문화를 가지고 있을 정도이다. 그래서 법주 홍주 매실주 다래주 소주 약주 탁주 정종 말고도 각종 약재를 넣어 몸에 좋은 술을 빚어 마셨다. 정말 우리문화야 말로 흔히 미래형으로 말하는 다품종 소량생산의 문화였다. 서양화하면서 획일적인 사고가 판을 쳐서 모든 것이 다양성을 잃고 획일화 되어버린 것이다. 말도 표준어를 강조하고 민요도 표준악보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 것 아닌가?. 본래 우리문화의 모습은 그런 것이 아닌데---.

말도 사투리가 발달하여 같은 말이라도 지방에 따라 발음이나 말버슴새(抑揚)가 다르다. 말이 다르면 노래도 달라진다 하지 않았는가?.  말이 달라지는 만큼 민요도 서로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민요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민요의 토리가 같은 지역과 다른 지역을 구분하여 민요지도를 만들 수 있다. 민요란 산 하나 넘고 강 하나 건너도 조금씩 다르게 마련이고 같은 사람이라도 부를 때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민요지도를 만들 때에는 민요토리를 중심으로 민요권이라는 것을 설정하여 그리는 것이 보통이다.  이보형씨는 우리 나라 민요권을 꽤 세분하여 여러 갈래로 나눈 적이 있지만 나는 아주 기본적인 것만 소개하기 위하여 크게 나누는 쪽을 택하기로 하겠다.

우리 나라의 민요권은 크게 수심가토리권, 경토리권, 육자백이토리권, 메나리토리권으로 나눌 수 있다. 수심가토리권은 평안도나 황해도 지역으로 흔히 서도민요라고 하는 민요가 발달한 지역을 말하는 것이고 경토리권은 서울을 중심한 경기도와 충청도일부를 포함한 지역을 말하는 것이다.  육자백이토리권은 육자백이와 같은 음악적특징이 나타나는 지역을 뜻하는데 전라도가 중심이지만 충청남도 남부와 경상남도 서남부까지 미치게 된다. 

민요보다 한 단계 높은 무속음악의 경우 육자백이토리는 경기도의 한강이남에서부터 충청도 정라도는 물론이요 경상남도 충무에 이르는 광범한 지역에 나타나기도 한다. 민요권보다 무속음악권은 훨씬 넓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예이다.  그리고 메나리토리권은 흔히 동부민요지역이라고 하는 경상도와 강원도 함경도 지방으로 태백산맥 이동지방이 이 민요권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옛날에는 누구나 자기가 사는 지방의 민요를 불렀고 지방에 따른 민요토리가 분명했다고 할 수 있다.  민요란 모 찔 때 부르는 민요도 있고 모심을 때 부르는 민요도 있고 논 맬 때 부르는 민요도 있으니까 자연 생활 가운데 일하면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부르던 것이다.  부녀자들은 길삼하면서도 노래를 부르고 어울려 놀면서도 노래를 불렀으니까 또 그런 생활에 적당한 노래가 발달하게 되었다. 

어촌은 어촌대로 배를 저어 나갈 때나 그물을 치고 걷을 때 다 노래하며 일했었고 그물에 가득한 고기를 배로 퍼 올릴 때에는 정말 기쁜 마음으로 힘찬 노래를 하면서 퍼 올리곤 하였다.  그런데 그런 기능을 가진 노래들이 지방마다 다 다르게 발달했기 때문에 우리 나라의 민요는 수백곡도 넘고 수천곡에 달하는 것 아닌가?.  민요야 말로 온 국민이 부르던 노래이고 생활 자체가 민요와 함께 하는 생활이었기에 그렇게 많은 민요가 발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부르는 민요였기 때문에 지방에 따른 특징이 잘 간직되어 소위 민요권이라고 하는 것이 형성될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일반인들이 민요를 거의 안 부르게 되었다. 아직 상여소리나 묘다지는 소리는 살아있지만 그것도 언제까지 갈지 의문이다. 일반인들이 민요를 부르는 생활이 바뀌어 버렸으니 자라나는 세대가 민요를 전수받을 기회가 없어지게 되고 따라서 그토록 다양하고 풍부하게 발달했던 민요문화가 인멸의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한편 다른 방식으로 민요가 생명을 유지하는 길이 열렸다.  민요명창이라는 직업이 생겨나게 되어 각종 공연이나 방송에서 인기를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요정 같은데에서 민요명창의 수요는 있었지만 지금 이후는 그때와 비교가 안될 만큼 민요의 수요가 많아지게 될 전망이다.

이렇게 되니까 자연 민요를 전공하려는 사람도 늘어나게 되고 또 새로운 민요류의 노래도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또 토속민요를 새 레퍼터리로 개발하여 자기의 영역을 넓혀가기도 한다. 그러다가 보니까 옛날과 다르게 민요명창들에 의한 민요의 영역이 발달하게 되고 따라서 민요권의 의미가 달라져 가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명창의 갈래는 서도명창 경기명창 남도명창 뿐인데 우리의 민요는 전국에 걸쳐 발달했으니까 자연 이들이 다른 지역의 민요를 자기 영역으로 끌어들어 기존의 테크닉을 활용하여 부르니까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게다가 학교의 민요교육이 활성화되면 또 다른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에 과거 지역중심으로 그리던 민요지도는 자연 변화를 겪게 될 것이고 따라서 민요지도도 다르게 그려야 할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최종민 (철학박사, 국립극장예술진흥회 회장,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