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타

벽돌로 지은 한옥의 재발견

김종헌 교수 대안건축 제시
목조구조 대중화 한계 지적
덕수궁 유현문·번사창 살펴

» 구한말 국내 벽돌 건축의 수작으로 꼽히는 서울 삼청동 번사창. 1884년 지어진 무기창고로 벽돌로 쌓은 벽체와 맞배기와 지붕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김종헌 교수 제공

한국 전통 건축의 대명사인 한옥의 재료는? 많은 이들은 주저 없이 나무를 꼽을 것이다. 궁궐부터 절집, 누각, 서민의 생활한옥에 이르기까지, 기둥과 보, 도리, 서까래 등의 나무 부재를 짜맞춘 집이 한옥이라는 게 우리의 상식이다. 그런데 전통 건축 역사를 더듬어 보면, 이런 상식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서울 도심 종묘와 동묘, 세계문화유산인 수원성은 기와지붕과 벽돌 구조가 조화를 이룬 명품 건축물들이다. 19~20세기 초 들어선 서울 북촌·서촌 한옥들도 기실 완전 목조가 아닌 벽돌 벽체 공간들의 비중이 크다. 벽돌 또한 한옥의 알짬인 셈이다.

이런 벽돌조 한옥 건축의 재발견과 대중화를 2000년대 이래 역설해온 건축사학자가 있다. 배재대 건축학부의 김종헌(49) 교수다. 그는 지난 19일 전남대에서 열린 한국건축역사학회 가을 학술발표대회에 ‘세우기와 쌓기의 특성 비교를 통한 근대기 벽돌조 건축에 대한 재해석-벽돌조 한옥의 가능성 탐색’이란 글을 발표하면서 벽돌조 한옥을 대안으로 거론해 눈길을 끌었다.

이 글에서 우선 지적한 것은 나무의 짜맞춤(결구) 구조에만 집착하는 현재의 한옥 대중화론이다. 지나친 목구조 위주의 공법 개량에만 관심이 쏠려 되레 한옥의 발전 가능성을 가로막는다는 우려다. 나무로 된 기둥과, 보, 도리의 짜임 방식에만 주목해 목조가구식 얼개만을 한옥으로 여기는 편견이 그 바탕에 자리잡고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벽돌조 한옥은 목조 건축에서 생기는 단열 문제, 지나치게 큰 목재를 써서 생기는 공사 비용 과다, 평면 구성의 한계, 조명·냉난방 설비 수용에 대한 난점을 넘어설 수 있어요. 벽체에 벽돌과 나무 기둥을 같이 쓰거나 벽체 전체를 벽돌로 넣고 지붕에 기와와 서까래만 이용해도 충분히 한옥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런 논지에서 본보기로 내세울 만한 근대식 한옥 건물이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 구내에 있는 구한말 무기고 ‘번사창’이다. 전통 기와지붕과 근대식 벽돌 자재들이 조화된 번사창의 벽돌건축은 동양의 벽돌 축조술과 서양의 구축기술이 절묘하게 결합된 사례라는 논지다. 벽돌 구조는 새 개념이 아니라 근대기 어디서든 볼 수 있었고, 북촌·서촌 벽돌조 생활한옥처럼 자생적으로 퍼진 보편적 한옥이었다는 생각이다. 근대기 번사창이나 덕수궁의 유현문 등에서 보이듯 전벽돌과 적벽돌을 훌륭하게 디자인해 이미 벽돌 축조기술의 전통은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김 교수는 “역사적으로 벽돌을 전통 건축에 적용한 예는 백제 무령왕릉부터 종묘, 동묘, 수원성 등 무수히 많았는데도,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며 “변화된 삶의 욕구에 따라 변천을 거듭해온 벽돌조 한옥은 앞으로도 한옥의 합리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겨레 노형석 기자 --> 기사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