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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민의 국악세상/국악칼럼

국악에는 화성이 없는가?



최종민 (철학박사, 국립극장예술진흥회 회장,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교수)

국악에는 화성이 있을까 없을까?.  서양음악에 익숙한 사람들이 국악을 들으면 서양음악에서 느끼는 그런 화성이 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때문에 국악에는 화성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 국악에는 그런 식의 화성은 없다.  화성법에서 공부한 3화음이나 속7화음 같은 화성은 없다. 그래서 국악에는 화성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한때 국악 공부하는 학생들 간에 가곡의 반주 기악을 채보하여 분석하면서 국악에도 화성의 현상이 있다고 한 예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정말 우연일 뿐 화성학에서 말하는 그런 종류의 화성은 아닌 것이다.  국악 작품은 화성학을 배경으로 작곡된 적이 없기 때문에 전통시대의 국악에는 화성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해도 된다. 

하긴 요즘의 창작 국악은 대부분 화성을 쓰고 있기 때문에 그런 작품은 나의 얘기에서 제외하고 있다는 것을 먼저 밝혀 두어야겠다.  내가 얘기하는 국악 작품이란 ‘수제천’이나 ‘여민락’ 같은 궁중음악, ‘종묘제례악’이나 ‘시나위 합주’같은 의식음악, ‘가곡’이나 ‘줄 풍류’같은 민간음악 등을 가리키는 것이어서 모두 지금도 연주되지만 전통시대에 발달한 합주음악들이다.

우리네의 합주 음악이 화성도 없이 합주를 한다고 하면 금방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이 “아 그러면 유니죤으로 연주하나 보다”하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면 우리네의 합주는 유니죤으로 되어있는 것도 아니다.  화성이 없다고 해서 우리네의 합주가 유치하다거나 텅 빈소리가 난다거나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면 무엇이란 말인가?.  ‘수제천’은 그 자체 충실한 음향과 엄청난 긴장감으로 누구나 감동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고 극찬하지 않는가?.

나는 방송을 하면서 자기는 클래식 팬이었는데 ‘수제천’을 듣고 사로잡혀서 국악을 늘 듣게 되었다는 애청자의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또 계명대학에서 음악이론을 가르치는 박모 교수는 ‘가곡(만년장환지곡)’이야말로 정말 훌륭한 음악이라고 나에게 극찬의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런 음악들은 다 서양음악에서 사용하는 그런 화성으로 되어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국악의 아름다움은 어떤 방법에 의해서 창출되는 것일까?. 

하긴 음악의 아름다움과 음악 하는 방법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우리음악의 방법이 화성의 측면 하나로 따졌을 때에도 서양음악의 방법과 다르다면 우리음악의 아름다움도 또한 서양음악의 아름다움과 다르다고 보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수제천’이나 ‘가곡’에서 크게 감동 받았다는 것은 그 음악들의 아름다움이 독특한 것이면서 그들의 가슴과 영혼을 사로잡았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해도 된다.  말하자면 우리음악의 아름다움 그 자체도 서양음악의 아름다움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이 성숙되지 못했거나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은 우리음악의 아름다움이나 음악 하는 방법이 서양음악과 다르다고 하면 불안해 하고 무언가 우리음악에 큰 잘못이라도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반대로 무언가 서양음악과 공통되는 우리음악의 방법을 발견하면 반가워하고 좋아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음악미가 다르고 우리의 음악방법이 다르다는 생각 자체를 모순이라고 비판하면서 결국은 서양음악의 모든 것을 본 받아야하는 것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하기는 이런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꽤 많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서양음악은 보편성이 있지만 우리음악은 보편성이 없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동조할 수 없는 획일적인 사고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느니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우리음악의 발전을 위해서도 우리의 생각을 먼저 바꾸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우리는 열등감에 사로잡힐 필요도 없고 획일적인 사고 때문에 “남이 장에 가니까 거름 지고 장에 간다”는 식으로 무조건 서양음악 흉내를 낼 필요도 없다.  먼저 음악이 문화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하겠고 문화는 다양하게 발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말과 영어가 다른 것처럼 우리 음악과 서양 음악도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으면 한다. 

그렇다면 우리 음악을 어떻게 가꾸어야 서양음악과 다른 더 멋진 한국음악을 만들 수 있을까?.   한국음악은 한국음악의 다른 특징을 잘 살리면서 미래지향적인 아름다움과 음악방법을 모색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음악의 아름다움과 음악방법을 체계적으로 파악하는 노력을 해야 하겠기에 오늘은 화성의 문제를 얘기하고 져 하는 것이다.

처음에 얘기했지만 우리 음악에는 서양의 화성학에서 말하는 그런 화성은 없다.  그러나 다른 의미의 화성을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화성을 만들어 내는 방법도 다르다.  서양의 화성은 도․미․솔처럼 높이가 다른 음들을 여러 개 결합하므로서 한 덩이의 음향을 만들어 내는 방법이지만 우리의 화성 방법은 각 악기의 재질이 만들어 내는 명주실 뜯는 소리 대통 울리는 소리 돌로 된 경을 두드리는 소리등 여러 가지 자연의 발음체들이 만들어 내는 그 다른 소리가 조화를 이루는 식으로 되어있다. 

소리를 충실하게 만드는 방법이 서양과 한국이 다른 것이다.  국악의 악기들은 구조 자체가 재질의 소리를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같은 높이의 음을 사용하여 선율을 만들어 갈 때에도 각 악기의 관용적인 표현 방법이 있어서 유니죤이 되지 않는다.  바꾸어 말하면 서양음악의 화성은 고른음으로 다듬어진 다른 높이의 음들을 결합하여 동시에 울리도록 하는 것이지만 국악의 화성하는 방법은 팔음(八音:악기를 만드는 8종의 재료)이라는 자연의 소리가 같은 선율이라는 질서를 유지하면서 각기 다른 방법으로 각음을 꾸미면서 진행하는 식이다. 

그래서 ‘영산회상’ 같은 작품을 분석해 보면 합주의 뼈대가 되는 구조선율은 거의 같은 음들로 되어 있지만 각 악기의 실제 선율은 그 구조선율을 공유하면서 서로 다른 식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유의 할 것은 각 악기의 선율은 그것대로 독립된 아름다움을 표출할 수 있을 만큼 완성도가 높은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합주 음악에서 한 악기만 따로 연주하면 독주가 되고 두 악기를 따로 연주하면 병주가 되기도 한다.  그런 국악의 실제를 통해서 화성의 의미를 다르게 정의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