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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인 이야기

국악계 노벨상 '제20회 방일영국악상' 안숙선 명창 선정




안숙선 프로필

"만정(晩汀) 김소희 (金素姬·1917~1995) 선생님이 살아계셨으면 '너 방정 떨지 말고 더 잘해!'라고 다그치셨을 텐데…. 그렇게 말씀해줄 분이 안 계셔서 담도 울도 없는 집처럼 허허롭네요."


서울 세곡동 자택에서 만난 안숙선 (安淑善·64) 명창의 표정은 뜻밖에 쓸쓸해 보였다. 제20회 방일영 국악상 수상자로 선정된 안숙선 명창은 1994년 제정된 방일영국악상 제1회 수상자인 만정의 제자다. 그해 세종문화회관 소극장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다른 제자들과 함께 축하 무대에도 섰다.

"60년대 말쯤 고향 남원으로 전화가 왔어요. 만정 선생이 찾으신다고…. 해외 공연에 데려갈 만한 실력이 있는지 한번 보시겠다는 거예요. 동생(안옥선)과 함께 올라가서 소리도 하고, 춤도 추고, 설장구에 가야금까지 다 조금씩 했어요. 선생님이 딱 한마디하셨습니다. '싹수가 있구먼'."

안 명창은 고향 남원에서 아홉 살 때부터 이모(강순영)에게 가야금을 배웠고, 외삼촌 강도근과 주광덕 선생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어릴 적부터 소리가 빼어나 '남원의 아기 명창' 소리를 들었다. 만정의 '호출'을 받고 1970년쯤 서울에 올라와 비원 근처 만정연구소에 매일 출근했다. 심부름도 하고, 소리를 배우면서 간간이 공연에도 끼었다. 1972년 향사(香史) 박귀희(朴貴姬) 선생에게 가야금 병창을 배운 것도 만정 문하에 있었을 때다.

향사는 옷차림과 몸가짐까지 꼼꼼하게 챙길 만큼 엄격한 스승이었다. "머리는 단정히 빗어 넘겨서 뒤로 묶어야 했고, 평소에도 어깨가 드러나거나 짧은 치마는 못 입게 하셨어요. 한번은 파마를 근사하게 하고 공연하러 갔는데 당장 머리 묶고, 파마 풀라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소리를 제대로 하려면 몸가짐과 내면이 모두 정돈돼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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